현장의 언어와 데이터가 AI를 만났을 때: 피치마켓의 쉬운 글 번안기 ‘피치서가ai’
아직까지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진 적이 없어 정확한 숫자는 알기 어렵지만, 국내 경계선지능인의 추정 비율은 13.6%, 초등학교 학급에는 평균 3명 정도 있는 것으로 추산돼요. 또래에 비해 인지적, 정서적, 사회적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 경계선지능인은 필요한 정보를 이해하고 학습하는 데 상대적으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느린학습자’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2017년 설립된 피치마켓은 경계선지능인은 물론,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하는 환경에 놓인 소외아동과 청소년, 그리고 정보 습득력이 다소 떨어질 수 있는 노년층과 이주민까지 다양한 이유로 정보 학습에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쉬운 글과 콘텐츠를 만들어 왔어요. 복잡한 문장을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풀어내고, 추상적인 개념에 더욱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이는 작업을 계속해 온 건데요. 문학부터 뉴스, 꼭 알아야 할 안내문, 각종 금융 정보까지 번안하며 연간 6천명이 넘는 학습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해요.
다만 이러한 번안 과정은 쉽지만은 않았어요. 이해하기 쉬운 글로 다양한 정보를 전달하려면 단어와 문장 구조, 맥락, 배경지식까지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야 했거든요. 당연하게도 많은 시간과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작업이었죠.
기존 번안 과정의 한계를 넘어 보고자 피치마켓은 지난 해 카카오임팩트와 모두의연구소가 운영한 ‘테크포임팩트 LAB’ 프로젝트를 통해 쉬운 글 번안기 ‘피치서가ai’를 공개했는데요! 피치서가ai는 문장을 풀어 쓰거나 쉬운 어휘로 대체하는 것을 넘어, 그동안 현장에서 쌓아온 데이터를 기반으로 피치마켓이 직접 만든 ‘쉬운 글 작성 가이드라인’을 적용해 더욱 명확한 번안을 빠르게 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난이도도 1부터 3단계까지 선택할 수 있고, 유료 플랜에서는 문장 구조, 맥락, 어휘, 배경지식, 글 구조 등 요소별로 세부적인 난도 조정도 가능해 다양한 독자의 특성과 필요에 맞춰 보다 세밀한 번안을 제공할 수 있도록 했고요.
[출처: 테크포임팩트 LAB ‘쉬운 말 번안 서비스’]
이전에 소개한 이주민과 난민을 위한 챗봇 ASKOVISA도 그렇지만, 피치서가ai 역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AI 모델은 아닙니다. 챗지피티나 클로드 같은 LLM에 더 정교한 검증 프로세스와 가이드라인을 더한 것인데요, “평균적”인 사용자와 “평균적”인 문해력을 기준으로 설계된 생성형 AI 도구를 그 평균 바깥에 있는 이용자들도 특정한 목적에 맞추어 손쉽게 쓸 수 있도록 다시 설계한 것입니다.
ASKOVISA를 만든 공익법센터 어필과 피치서가ai를 만든 피치마켓이 이러한 서비스를 만들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기술력보다 더 중요한 무기가 있었어요. 바로 각자의 현장에서 오랫동안 쌓아온 전문성과 경험, 그리고 그 과정에서 축적한 현장의 언어와 데이터입니다. 이미 존재하는 AI 기술을 그대로 쓰기 보다는, 이 ‘무기’를 활용해 AI가 생성해낼 수 있는 오류와 편향을 걸러내고 가이드라인을 세워 책임 있게 쓸 수 있는 도구로, 그리고 앞서 말했듯 특정한 목적에 맞게 쓸 수 있는 도구로 다듬을 수 있었던 거죠.
두 사례는 무작정 AI를 도입하거나 바이브코딩으로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만이 AI로 사회적 임팩트를 만드는 길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줘요. 이처럼 가지고 있는 경험과 데이터를 어떻게 연결할지 고민하는 것이 AI-기반 임팩트를 만드는 데 있어 앞으로 더욱 중요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참고문헌:
김태은 외. “초등학교 경계선 지능 학생 실태 분석 및 지원 방안 연구.” 한국교육과정평가원, 2026.
신유정. “‘클릭 한 번으로 쉬운글’ 피치마켓, AI 번안기 ‘피치서가ai’ 공개.” 느린인뉴스, 2026.01.14.
카카오임팩트. “LLM 번안 기술로 정보 격차를 줄일 수 있을까?” Tech for Impact LAB,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