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미래, 사람과 사회를 널리 이롭게 하는 법: AI 문명 대전환기, 비영리 활동의 지향점에 대하여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

비영리 활동가들을 위한 칼럼을 의뢰받았을 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비영리 활동의 목표는 홍익지능의 슬로건에 나타나 있듯 ‘널리 사람과 사회를 이롭게’ 하는 일이다. 그런데 널리 이롭게 하려면 활동의 지향점이 분명해야 한다. 우리 활동이 어떤 사람과 어떤 사회를 목표로 하는지부터 정확히 정의되어 있어야 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문명의 대전환기에는 세계관이 달라진다. 그렇다면 비영리 활동의 지향점부터 달라질 수 있다. 과연 지금이 그런 시대일까?
나는 2019년 『포노 사피엔스』를 썼다.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쓰는 문명이 인류의 표준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이 현실을 부정할 사람은 이제 없다. 물론 게임 중독, 쇼츠 중독, 온라인 도박 같은 부작용은 여전하다. 그럼에도 인류는 스마트폰 문명을 선택했다. 장점이 훨씬 컸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이 적은 비용으로 지식을 얻게 되었고, 권력자가 언론과 결탁해 묻어버리던 일도 폰 하나로 맞설 수 있게 되었다. 미투 운동도,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도 디지털 문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소수의 엘리트가 세계관을 정의하고 방송이라는 레거시로 전파하면 대중이 그대로 믿고 따르던 사회에서, SNS는 대중의 손에 권력을 쥐어주었다. 그 이동은 산업 생태계까지 바꿨다. 인류는 택시 대신 우버를, 마트 대신 모바일 쇼핑을, TV 대신 유튜브를 선택했다. 백 년간 끄떡없던 레거시가 무너지고 대중이 권력도 자본도 나눠 갖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디지털 문명 전환을 막는 것이 홍익인간의 정신일까, 전환을 위해 교육하는 것이 홍익인간의 정신일까.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2024년 나는 다시 『AI 사피엔스』를 냈다. 역사를 반추해 보면 AI 문명 대전환 역시 정해진 미래다. 나보다 똑똑한 AI 에이전트와 노동 로봇은 스마트폰과 비교도 안 될 만큼 다른 사회를 만들 것이고 부작용도 클 것이다. 그래도 인류는 선택을 피할 수 없다. 사피엔스 7만 년 역사에 생존에 유리한 선택을 포기한 종족이 살아남은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그렇다면 남은 일은 부작용을 줄이며 그 미래를 사람에게 이로운 사회로 만드는 것이다. 비영리 활동가들이 할 일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방법은 오직 공부밖에 없다.
작년만 해도 AI에게 질문을 잘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올해는 정보를 다 넣어주고 하고 싶은 일만 알려주면 AI가 스스로 계획을 짜고 처리하는 에이전틱 AI의 시대로 들어섰다. 한쪽에서는 에이전트를 수십 명(?)씩 만들어 자기들끼리 데이터를 주고받게 하는 하네스 엔지니어링까지 쓰고 있다. 예산이 빠듯한 비영리 단체에서 이만큼 일 잘하는 직원을 찾기는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청소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하는 단체라면, 지난 3년치 사업보고서와 참가자 설문 원본과 미션 선언문을 통째로 AI에게 넘기고 물어보라. “우리가 정의한 문제가 지금도 유효한가. 우리가 놓치고 있는 대상은 누구인가.” AI는 편향된 생각을 바로잡아 줄 수 있는 파트너다. 시대가 변화했다면 비영리 활동의 방향성도 날카롭게 살펴야 한다. 사람은 자기가 몸담은 사업을 스스로 부정하기 어렵지만 AI는 그 일을 감정 없이 해준다. 사업 기획에서 AI의 역할은 더 극적이다. 캠페인 하나를 준비한다면 기획 에이전트, 법률 검토 에이전트, 인허가 확인 에이전트, 비용 추산 에이전트, 홍보 에이전트를 각각 만들어 붙인다. 담당자 혼자 몇 주를 매달리고도 뒤늦게 사고가 터지던 일이, 기획안 한 장에 다섯 방향의 검토로 하루 만에 돌아온다. 특히 값진 것이 사전 점검이다. 비영리는 늘 사람을 다루기에 문장 하나, 사진 한 장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캠페인 문구에 시혜적 시선이 담기지는 않았는지 AI는 지치지 않고 분석해 준다. 행사가 끝난 뒤 흩어진 후기와 댓글에서 무엇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읽어내는 일도 에이전트 적분에 몇 시간이면 끝낼 수 있다. 보고서 작성은 AI 에이전트의 특기다.
올해 에이전틱 AI가 이만큼 활성화된걸 보면 내년에는 수십 개의 에이전트를 지휘하는 오케스트레이션 기반의 업무 방식이 상식이 될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런 방식으로 1인 창업까지 하고 있다. 지금 두려워 물러서면 도구 하나를 놓치는 게 아니라 문명 전환의 기회를 통째로 놓치는 것이다. 오늘 에이전트 하나를 만들어보자. 널리 사람과 사회를 이롭게 하는 일도, 이제는 AI와 함께 하는 시대다.
✍ 최재붕 |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
『포노 사피엔스』와 『AI 사피엔스』를 통해 문명 대전환의 방향을 읽어내는 일을 해왔습니다. 기술이 만드는 변화를 두려움이 아니라 공부의 대상으로 삼을 때 비로소 사람에게 이로운 사회가 만들어진다고 믿으며, 기업과 공공, 비영리 현장을 오가며 그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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