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우리에겐 힘이 있다.
조경숙 도토리랩스 대표

“선생님은, 좀 비겁하시네요”
지난 번, 한 대중 강의를 마치고 났을 때 어떤 청중이 내게 와 한 말이다. 그날은 몹시 더웠고, 습하기까지 했다. 버스에서 내려 정류장에서 강의장까지 고작 도보 5분 거리였는데도 가는 길에 땀으로 옷이 흠뻑 젖어버렸다. 무더위를 무릅쓰고 도착한 만큼, 다들 강의를 시작하기 전부터 이런 더위는 다 기후 위기 때문이고, AI가 여기에 악영향을 미친 거라며 입을 모아 비판했다. 나도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 시작된 강의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다뤘다. 수도권 내 데이터센터가 증가하는 문제, 그 때문에 지역에는 송전탑이 만들어지는 것들. 그리고 기후 위기와 개인정보 유출….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을 사용해야 하는 어떤 지점들에 관해서도 덧붙였다.
강의가 끝난 뒤 질의응답 시간, 누군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사람들이 AI를 쓰지 않도록 캠페인을 하는 건 어떨까요?” 나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AI가 필요한 곳에는 써야죠. 쓰지 말자는 게 아니라, AI 산업에 대한 맹목적인 투자가 갖고 오는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뒤이어 다른 청중이 또 손을 들었다. “그러면 우리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에도 내가 오래 쌓아 온 답변 프로토콜이 있었다. AI 회사의 주식을 사지 않기, AI 산업의 이면을 직시하기, AI 정책을 모니터링하기…. 그러나 말하면서도 어딘가 찜찜했다. 날씨는 이렇게 더운데, AI가 초래하는 문제들은 너무 거대하고, 그러나 막상 대응할 수 있는 행동 전략이라는 건 너무나 소소해 보였으니까. 그보다는 청중 모두가 “우리 모두 AI를 쓰지 맙시다”와 같은 선언을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았고, 심지어 나도 그 말을 하고 싶긴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강의 말미에 내게 비겁하다고 던졌던 그 감상은, 아마도 그런 맥락 아래 있었으리라.
AI를 쓰지 말자고 얘기할 수 없는 이유는, AI가 필요한 영역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구글 딥마인드의 CEO 데미스 허사비스는 한 인터뷰에서 “AI가 질병 치료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는데, 그것을 활용하지 말자고 하는 것은 심지어 비도덕적이라고도 볼 수 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내가 있는 영역에서도 그렇다. 유포된 불법 성착취물을 AI로 빠르게 찾아내는 일, SNS에 게시된 딥페이크 광고 등을 AI로 모니터링하는 것들을 그만 둘 수는 없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AI가 필요한 사람들은 분명 존재한다. 예전에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던 외국어 자료를 AI 통번역을 통해 더 빠르게 이해하고 지식을 습득할 수 있으며, 개발 난도가 높아 구현하지 못했던 서비스를 AI 에이전트의 도움을 받아 직접 만들어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AI를 쓰지 말자’고 확답을 듣고 싶었던 그 마음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은 종종 무력감에 빠지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 통제감을 회복하려 한다. 예를 들어 인테리어가 대표적이다. 방의 물건을 원하는 곳에 옮겨 놓으며, 내가 내 주변을 통제할 수 있다는 감각을 상기하는 것이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하면서 내 힘을 곱씹는 것. “AI를 쓰지 말자”와 같은 개인 차원의 실천을 곧장 떠올리는 것도, AI가 불러오는 거대한 문제들-예를 들어 전쟁, 기후 위기, 데이터 유출 등-로부터 대항하기 위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서부터 시작하려는 노력으로 읽을 수 있다. 자꾸만 무력해지는 이 거대한 문제 앞에서, 어떻게든 힘을 되찾으려는 의지인 것이다.
AI와 관련한 연단에 여러 번 서면서도 나 역시 끊임없이 무력감에 시달렸다. 수많은 문제가 겹겹이 얽혀 있는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가 희미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민해 내놓은 대안이 고작 AI 기업의 주식을 사지 않는 것이라니, 내가 청중이었어도 맥빠질 수밖에 없는 대답이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내가 어떠한 해결책을 직접 제시하기는 어려웠는데, 최근에 만난 한 권의 책이 내게 뜻밖의 대안을 건넸다. ‘불확실한 세계를 돌파하는 과학의 태도’라는 부제를 단 이 책 《궤도 너머》는 과학자가 어떻게 자신의 연구 주제를 탐구해 나가는지를 자세히 설명한다. 그중엔 이런 문장이 있다. “관찰은 우리가 이미 아는 것과 알고 싶은 것 사이의 간극을 재기 위해 안개 속을 바라보는 행위다.” (《궤도 너머》 31쪽).
AI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단지 알고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AI라는 기술이 세계에 어떤 부작용을 불러오는지까지 들으려는 마음, 그런 마음을 품고 무더운 날씨를 뚫고 강의장까지 찾아온 발걸음. 그리고 AI가 불러오는 문제와 AI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 사이의 간극 앞에서도 어떻게든 AI 이슈를 따라가며 이 답답한 안개 속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일. 이 모든 것들은 실질적인 행위이고, 이러한 행위를 가능케 하는 것은 무력감으로부터 나아가려는 우리의 힘이다. 지금 당장 답이 없거나 답을 내릴 수 없더라도, 어떤 답을 찾아내기 위해 계속해서 듣고, 찾고, 배우는 행위 – 우리는 ‘관찰’하고 있는 것이다.
AI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면 늘 ‘그래서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어’라는 좌절로 흐르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적은 자원으로 거대한 문제와 싸워야 하는 비영리단체 활동가들일수록 더욱 그런 듯하다. 그런 무게에 짓눌릴 때마다, 나는 오랫동안 난제와 씨름했던 이들의 경험담에서 방향성을 얻는다. 앞서 인용한 문장 뒤에는 이런 글이 따라 나온다. “어떨 때는 관찰을 멈추고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상당히 인내해야 하는 상황도 있다. (중략) 관찰과 결정 사이의 틈은 너무 좁아서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관찰하고 생각할 기회를 얻기도 전에 결정해 왔다” (《궤도 너머》 46쪽)
AI를 사용하면 내 문제에 대한 정답을 얻기 위해 아무것도 인내할 필요가 없지만, 그런 AI에 적절히 대항하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에게 인내가 필요하다. 우리가 AI의 발전 속도에 맞춰 무언가를 결정할 필요는 없다.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직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이 거대한 문제 앞에서 무언가를 빠르게 결정하기보다, 차라리 인내하며 관찰하고 생각하는 일이 더 필요하다는 점을 남겨두고 싶다. 이 시대 AI가 할 수 없는 일은 바로 정성과 시간을 들이는 것이다. 빠르게 결단하지 않고 오랫동안 관찰하고 생각할 때, 비로소 우리는 이 안개 속을 돌파할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앞선 이들이 모두 그러했던 것처럼.
✍ 조경숙 | 도토리랩스 대표
“기술은 현장에서 시작된다”는 믿음으로 시민사회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다양한 기술(업무 자동화, 캠페인 웹사이트 제작 등)을 개발하는 IT 에이전시 ‘도토리랩스’를 운영한다. 현재 성균관대 과학수사학과에서 피해중심기술(Survivor-Centered Technology)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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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 너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