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빅 퀘스천(Big Question)은?
김유리 사단법인 시민 사무처장

“무한한 호기심과 무모한 기질이 ‘왜’를 묻게 하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난 ‘왜?’라는 질문을 입에 달고 산 편이었다. 아주 사소한 것부터 혹은 TV 뉴스 등을 보며 ‘왜(why) 병’에 걸린 것 마냥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저건 왜 그래?’라는 질문을 많이 던지며 주변 사람들을 괴롭혔다. 이런 나에게 가끔 부모님은 그만 좀 물어보라고 할 정도였다. 부모님이 미처 대답을 안 하시면 ‘창피한 게 아니니 어른도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해도 된다’고 당돌하게 말하던 나를 보며 나의 부모님은 얼마나 기가 차셨을까 싶어 순간 아득해진다.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그 질문을 사전에게 던졌다. 수업을 듣다가 혹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다가도 어떤 단어에 꽂히면 그 단어의 뜻과 맥락을 반드시 찾아보곤 하였다. 이렇듯 세상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이 가득했던 영향 때문인지, 아니면 무모한 기질이 가득했던 영향 때문인지, 지금 이렇게 시민사회 활동가라는 직업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 다시 나는 ‘왜?’라는 질문에 빠져 있다. 바로 AI를 향해서이다. 그 시절, 부모님에게 여쭤보던, 사전에게 던지던, 주변인들에게 확인하던 나의 질문들은 이제 AI를 향했다.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
시민사회가 일반 영역의 직업군과 다른 결은 우리만의 문법과 언어를 만들어간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의 활동은 대개 ‘조작적 정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활동의 규범과 준거틀을 기반으로 우리만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사전적 정의라는 본 뜻에 충실하되, 한발 더 나아가 조작적 정의를 통해 기존의 틀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담대함, 이것이 바로 우리만의 문법과 언어가 갖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 속에서 우리의 ‘내러티브’를 만들어가는 역할이 바로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인 우리의 역할이다. 이 문법과 언어는 ‘사회적 대화를 위한 소통장치’로서 일종의 사회적 약속이라고 할 수 있다. 문장을 이루는 규칙을 떠올려 볼 때, 어떤 단어가 생략되어도 그 문맥의 뜻이 통하는 것은 오랜 시간 축적된 우리가 만든 사회적 규칙 때문이다. 거기에는 ‘맥락(context)’이 중요한 기제로 작용한다. 맥락이 없다면 생략된 문법에 담긴 함의를 찾기 어렵고, 인과관계를 파악하기 어렵다. 그래서 문제정의가 중요하다. 시민사회는 본질적으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존재하는 영역이다. 점점 복잡하고 복합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사회문제는 말 그대로 난제(難題)이다. 이를 위해서는 적확하고, 정확하고, 명확한 문제정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문제정의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10여 년 전, 지역의제 해결을 위한 문제정의 워크숍을 활동가들과 하였는데, 생각보다 많은 활동가들이 본인 활동에 대한 문제정의를 어려워 하였다. 오랜 기간 활동한 경력 활동가들조차 쉽지 않아 했다. 문제정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당위 속에서 관념적으로 행위하던 것들을 다시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활동가인 우리는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그 질문이 왜 문제해결을 위한 시작점이 되는지 깨닫는 순간들이었다. 지금 AI 시대에 다시 문제정의가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프롬프트는 있지만, 사유가 없다.”
시민사회는 늘 ‘아니 불(不, 부)’에 맞선 활동을 해 왔다. 불평등, 불합리, 불균형, 불안정, 부당함, 부정의 등. 때로는 역설을 깨고, 때로는 반대로 역설을 만드는 활동을 한다. 이를 통해 기존의 규칙에 균열을 내고, 기존의 프레임을 재구조화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이 우리의 문법이자 언어이다. 그렇지만, 점점 우리만의 문법과 언어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AI에게 기계적으로 기대어 점점 ‘고유한 입말과 글말’이 사라지고, 깔끔한 문장과 명료한 화법 만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다. AI 시대 속에서 여전히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질문’을 하고 있다. 즉각적인 답을 빨리 확인받고 싶어 던지는 기계적 질문들로 가득하다. 기계적 질문들이 뽑아낸 정교한 답은 있지만, 그 글 안에 사유하는 힘이 안 보인다. 즉시성이 주는 즉답은 있지만, 사유할 틈이 안 보인다. 김애란 작가가 “AI에게는 없고, 인간에게는 있는 것이 ‘망설임’”이라고 말한 맥락도 아마도 ‘주저함 속에서 사고하는 사유의 틈’을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한다.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는 것처럼, AI의 기술적 활용은 분명 필요하고, 어쩔 수 없는 변화 ‘순응’이 아닌 현명한 변화 ‘적응’ 차원에서도 순기능이 있음에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기성 사회의 렌즈를 살짝 비틀어서 문제를 발견하고, 탐구하며, 우리만의 문법과 언어로 끊임없는 ‘캐물음’을 해 나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역할을 오롯이 AI에게 전부 일임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문제정의는 문제의 본질을 탐색하는 과정이다. 문제의 본질을 탐색하는 과정에는 사유가 필요하다. AI시대라는 현생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수세기 전에 데카르트가 말하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가 여전히 유효한 이유이기도 하다. 빅 퀘스천(Big Question)은 거대한 질문을 의미하지 않는다. 문제정의 과정과 마찬가지로 본질을 찾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본질적인 질문들이 보여 빅 퀘스천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한다. 시민사회가 빅 퀘스천을 놓치지 말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10여 년 전에 읽었던 칠레 시인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파블로 네루다의 ‘질문의 책’을 최근에 다시 읽었다. 이 책은 316개의 질문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쩌면 옳은 정답 보다는 어떤 질문을 하는 것이 중요한 지를 네루다는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한다. 이 책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글귀인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라는 문구가 나온다.
유년 시절, 세상을 향한 호기심이 가득하여 늘 질문을 품고 살았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AI 뒤에 가려져 숨어 있을까? 활동가가 된 그 아이는 여전히 빅 퀘스천을 찾아 헤매는 중일까?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 김유리 | 사단법인 시민 사무처장
교육콘텐츠 개발 회사원으로 살다가 어느 날 문득! 환경단체 활동가가 되었습니다. 환경단체에서 10여 년을 활동하고, 이후에는 시민사회 중간지원조직에서 다시 10여 년을 활동하였습니다. 현재는 시민사회가 단단한 제도정책 기반 위에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시민사회, 시민단체, 활동가라는 단어가 밀려 나가고, 새로운 단어들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시민사회, 시민단체, 활동가라는 그 단어들이 갖는 힘을 믿으며, 고지식하고 고집스러워 보일지라도 그 단어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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