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박정웅 임팩트얼라이언스 커뮤니티 오퍼레이터, 언러닝컴퍼니 공동창업자

2024년 12월, 한강 작가는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에서 물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나는 이 질문을 빌려 와 다시 묻는다. AI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기술이 사람을 살릴 수 있는가?

비영리에서 일한다는 것의 의미가 달라졌다. 과거의 사회운동에는 생존의 절박함과 민주화라는 시대적 과제가 있었다. 당위와 철학이 사람을 불러 모았다. 그러나 선진국이 된 한국에서 사회혁신을 커리어로 선택하는 새로운 세대에게 중요한 것은 나다움과 자기효능감이다.

이 세대가 서 있는 자리를 보자. 이들은 앞선 세대가 산업화와 민주화로 일군 선진국에서 태어난 첫 세대다. 그 성취를 물려받은 덕분에 더 높은 기준과 감각을 갖게 되었지만, 정작 이들이 마주한 것은 저성장 국면, 세계에서 손꼽히는 경쟁 밀도, 그리고 초급 일자리부터 지워가는 AI다. 이들에게 일은 조직의 업무를 1/N로 나눠 받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2~3년 뒤 부가가치가 생기는 일을 해야 커리어가 자산으로 쌓인다. 이 세대에게는 일을 통해 내가 나아지고 있다는 감각 자체가 임금 못지않은 보상이다. 디지털과 AI 역량은 그 감각을 지탱하는 자기효능감의 현대적 조건이다.

그래서 나는 사회혁신 생태계가 먼저 좋은(decent) 일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세대가 계속 합류하려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구만큼 일을 더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구에 응답할 수 있어야 한다. 보고를 위한 보고, 증명을 위한 증명에 자원이 소진되는 조직, 증거보다 알리바이를 만드는 데 시간을 쓰게 하는 구조에 다음 세대는 오지 않는다. 좋은 일터는 구성원이 진짜 일, 현장의 변화를 만드는 일에 집중하게 하는 곳이다. 디지털 전환은 그 집중을 가능하게 하는, 좋은 일터의 출발선이다.

오해는 말자. “비영리를 영리하게”라는 슬로건이 영리기업만큼 돈을 잘 벌자는 취지가 아니듯, AI를 잘하는 것 자체가 우리의 길은 아닐 수 있다. AI는 우리가 경쟁할 목적이 아니라 갖춰야 할 태도다. 이전에는 기계에게 일을 시키려면 기계의 언어인 코딩을 배워야 했지만,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이제 기계가 인간의 언어를 해킹했다. 말과 글을 다룰 수 있으면 누구나 기계에게 일을 시킬 수 있다. 그러니 AI라는 기술은 전문 스킬이라기보다 언어에 가깝다. 모두가 유창할 필요는 없다. 읽고 쓰고 질문할 수 있는 문해력이면 충분하다.

다만 위험이 하나 있다. 지금까지 조직의 속도를 늦추는 병목은 대부분 사람이었다. 검토하고, 질문하고, 합의를 기다리는 시간이 그것이다. AI는 이 병목을 빠르게 제거해 간다. 조직은 속도를 얻는다. 그런데 병목이 사라진 조직에서는 사람의 쓸모가 처리량으로 계산되기 시작하고, 어느새 사람이 도구처럼 소비될 수 있다. 속도를 얻는 대신 관계라는 깊이를 잃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리더십은 어디에서 일부러 느려질 것인가를 정하는 일이 중요해진다. 일부러 느려져야 할 곳은 분명하다. 사람이 사유하고, 판단하고, 서로 관계를 맺는 지점이다.

한강 작가는 같은 강연에서 물었다. “우리는 인간을 사랑하고자 하기에, 그 사랑이 부서질 때 고통을 느끼는 것일까?” 사회혁신은 결국 그 고통을 감수하겠다는 선택이다. 그렇다면 AI에 대해서도 같은 자리에서 물어야 한다. 나의 생산성을 높이는 도구를 넘어, 바로 옆자리의 동료를 돕기 위해, 서로가 서로의 보상이 되도록 AI를 쓸 수 있을까.

“작별하지 않기를 맹세하는 사람들의 촛불은 어디까지 여행하게 될까?” 나는 이 생태계와 작별하지 않기를 맹세하는 동료들을 생각한다. 그들의 손에 촛불과 함께 쥐여 줄 도구를 생각한다. AI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도울 수 있다, 우리가 서로를 살리는 데 쓴다면.

 

박정웅 | 임팩트얼라이언스 커뮤니티 오퍼레이터, 언러닝컴퍼니 공동창업자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모든 이해관계자 사이의 통번역사.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스타트업(영리/비영리), 투자사, 지원조직이 모여 만든 임팩트 조직 네트워크인 임팩트얼라이언스에서 생태계의 우정과 신뢰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요. 사회혁신 조직이 미션에만 몰입하도록 돕는 언러닝컴퍼니를 마음 맞는 동료들과 창업한 N잡러이기도 합니다. (링크드인)

📚 칼럼과 함께 읽을 추천도서 바로가기
함께 자라기: 애자일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