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비영리의 일을 대신할까, 함께 일하는 힘을 키울까

강정수 (주)블루닷 AI 연구센터장

비영리 활동가의 하루를 떠올려 봅니다. 오전에는 사업 계획서를 고쳐야 하고, 오후에는 후원자에게 보낼 뉴스레터를 써야 합니다. 회의록도 정리해야 하고, 자원봉사자에게 연락도 해야 합니다.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마음에 남아 있는데, 그것을 보고서의 언어로 바꾸는 일은 늘 어렵습니다. 지역의 문제는 복잡하고, 함께 일해야 할 사람은 많고, 정작 조직 안에는 사람이 부족합니다.

이럴 때 AI는 분명 매력적인 도구입니다. 긴 문서를 요약해주고, 보도자료 초안을 써주고, 회의록을 정리해주고, 캠페인 문구를 제안해줍니다. 작은 조직일수록 AI가 주는 효율성은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비영리 단체도 AI를 써야 하는가”는 적절한 질문이 아닙니다. 이미 써야 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다만 저는 한 가지 질문을 더 붙이고 싶습니다. 비영리의 AI는 단순히 일을 빨리 끝내는 도구여야 할까요. 아니면 우리가 더 잘 연결되고, 더 잘 협력하고, 더 오래 함께 행동하도록 돕는 기술이어야 할까요. 요즘 AI 분야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 ‘AI 에이전트’입니다. 챗봇이 질문에 답하는 AI라면, 에이전트는 사람을 대신해 일정한 일을 수행하는 AI에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 회의록을 바탕으로 후원자에게 보낼 안내 메일 초안을 만들고, 관련 통계를 표로 정리해줘”라고 요청하면, 에이전트는 문서를 찾고, 내용을 정리하고, 메일 초안을 만들고, 필요한 경우 사람에게 확인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아직 완벽하지 않습니다. 실수도 많고, 검토도 필요합니다. 이렇게 AI는 단순히 답변하는 도구에서, 우리가 일을 맡기고 감독하는 도구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변화를 개인의 생산성만으로 이해하면 중요한 가능성을 놓치게 됩니다. AI 에이전트는 한 사람을 더 유능하게 만드는 도구일 뿐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기술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조정의 기술(coordination technology)’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비영리 활동은 본질적으로 조정의 일입니다. 문제를 발견한 사람, 문제를 겪는 사람,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사람, 자원을 가진 사람, 정책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을 연결하는 일입니다. 돌봄, 교육, 주거, 환경, 인권, 지역사회, 기후위기 같은 문제는 혼자 해결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여러 사람의 이해, 경험, 시간, 신뢰가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의 조정은 어렵습니다. 중요한 결정은 누군가의 메신저 안에 묻혀 있고, 회의에서 나온 약속은 다음 주가 되면 흐릿해집니다. 한 활동가는 지역 변호사를 알고 있고, 다른 활동가는 토요일에 쓸 수 있는 공간을 알고 있는데, 서로 그 사실을 모릅니다. 현장의 목소리는 많지만 그것을 정책 언어로 정리할 시간이 없습니다. 회의는 많지만 기억은 흩어지고, 의지는 있지만 실행은 자주 미뤄집니다.

AI 에이전트가 비영리 현장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지점은 바로 이 다양한 조정 업무입니다. AI가 흩어진 기억을 붙잡고, 놓치기 쉬운 약속을 챙기고, 서로의 의도를 발견하고, 함께 행동할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지역에서 청년 주거 문제를 다루는 단체들이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어떤 단체는 상담 기록을 가지고 있고, 어떤 단체는 빈집 정보를 알고 있고, 어떤 단체는 법률 지원 네트워크를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각자의 자료가 따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안전한 원칙과 동의 절차 위에서 AI 에이전트가 이 정보를 연결해준다면, “지금 이 지역에서 가장 자주 반복되는 문제는 무엇인가”, “함께 대응하면 효과가 큰 사안은 무엇인가”, “다음 회의 전에 누구와 먼저 이야기해야 하는가”를 더 빨리 파악할 수 있습니다.

희귀질환 환자 가족 모임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들은 서로 다른 지역에 흩어져 있고, 병원과 제도도 다릅니다. 하지만 이들이 가진 경험과 자료가 잘 연결된다면 임상 시험 정보, 복지제도, 치료 경험, 정책 요구를 함께 정리할 수 있습니다. 환경 문제도 그렇습니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여러 지역이 연결되어 있지만 행정구역은 따로 나뉘어 있습니다. AI는 강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위험과 이해관계를 더 잘 보이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런 가능성은 비영리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비영리는 늘 부족한 자원 속에서 많은 관계를 다룹니다. AI가 반복 업무를 줄여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공동의 기억과 실행력을 키워주는 일입니다. 좋은 비영리 조직은 단지 일을 많이 하는 조직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경험을 모으고, 문제를 함께 정의하고, 작지만 지속적인 행동으로 바꾸는 조직입니다.

물론 위험도 있습니다. AI가 회의 내용을 예쁘게 요약한다고 해서 더 깊은 합의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더 많은 의견을 수집한다고 해서 더 민주적인 결정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AI가 사람들을 자동으로 연결해준다고 해서 신뢰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AI는 불편한 갈등을 부드러운 문장으로 덮어버릴 수 있습니다. 참여한 것처럼 느끼게 만들지만, 정작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데이터가 부족한 사람, 목소리를 기록으로 남기기 어려운 사람, 디지털 도구에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은 더 보이지 않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비영리의 AI 활용에는 몇 가지 원칙이 필요합니다. 첫째, AI는 결정권자가 아니라 조력자여야 합니다. 둘째, 중요한 판단에는 반드시 사람이 확인하고 책임져야 합니다. 셋째, 어떤 자료를 AI가 보고 있는지, 어떤 기준으로 제안했는지 설명 가능해야 합니다. 넷째, 효율성이 관계와 신뢰를 훼손하지 않는지 계속 점검해야 합니다.

비영리 활동가들에게 AI를 두려워하지 말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동시에 AI를 마치 모든 문제의 해결사처럼 대하지도 않았으면 합니다. AI가 가장 잘하는 일은 속도를 높이는 일입니다. 그러나 비영리가 지켜야 할 것은 속도만이 아닙니다. 사람의 존엄, 관계의 회복, 공동체의 신뢰,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 느리지만 필요한 설득의 과정은 여전히 사람의 몫입니다.

그렇다면 비영리 현장에서 AI를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요. 저는 거창한 혁신 프로젝트보다 작은 질문에서 출발하기를 권합니다.

  • 우리 조직에서 자주 흩어지는 기억은 무엇인가.
  • 회의 후 실행되지 못하고 사라지는 약속은 무엇인가.
  •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이나 캠페인 언어로 바뀌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서로 연결되면 더 큰 힘을 낼 수 있는데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 질문들에 답하는 과정에서 AI는 좋은 동료가 될 수 있습니다. 더 빨리 쓰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더 잘 듣기 위해서. 더 많은 문서를 만들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더 나은 행동을 함께 만들기 위해서. 더 효율적인 조직이 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더 잘 연결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말입니다.

AI는 비영리의 일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AI는 연대도, 신뢰도, 책임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AI는 우리가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너무 자주 새어나가던 기억과 약속과 가능성을 붙잡아줄 수 있습니다.

AI 시대의 비영리는 더 빠른 조직이 되는 데서 멈추지 않았으면 합니다. 더 잘 연결되는 조직, 더 깊이 듣는 조직, 더 오래 함께 행동하는 조직이 되었으면 합니다. 비영리에게 AI의 진짜 가능성은 생산성 향상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힘을 키우는 데 있습니다.

 

✍ 강정수 | (주)블루닷 AI 연구센터장
㈜블루닷 에이아이에서 AI 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연세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한 후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 및 석사를, 비텐-헤어데케 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를 취득했다.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 연구원과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특임 교수를 거쳐, 미디어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및 투자회사 ㈜메디아티의 CEO로 활동했다. 2019년부터 2년간 대통령 비서실 디지털소통센터장을 맡았고, 현재는 ‘AI 경제’ 및 ‘디지털 전략’을 주제로 다양한 기업과 언론에서 강의하고 있다.『생성 AI 혁명』, 『디지털 미디어 인사이트』, 『테슬라 폭발적 성장 시나리오』, 『보이스 퍼스트 패러다임』, 『알고리즘 사회』 등의 공저자이며, 『당장 써먹는 틱톡 마케팅』 저자이다.

📚 칼럼과 함께 읽을 추천도서 바로가기
권력과 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