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스스로 자리를 찾지 않는다

박상현 <오터레터> 발행인

올해 미국 대학교 졸업식에서 연설자로 초청된 손님들이 야유를 받는 일이 여러 차례 발생해서 화제였다. 그들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AI 혁명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순간, 학생들이 큰 소리로 야유를 보낸 것이다. 흥미로운 건, 그런 연설을 한 사람들이 대부분 기업의 CEO 출신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이제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AI 혁명이 가져올 변화에 빨리 올라타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 것이지만, 학생들은 기업이 AI를 도입한다는 핑계로 직원을 대량 해고하거나, 채용을 줄이는 상황에서 CEO가 AI를 찬양하는 것에 분노한 것이다.

AI를 개발하는 기업이나, AI를 내세워 주가를 올려야 하는 경영진이 AI를 낙관적으로 묘사하고 싶은 건 이해할 수 있지만, 그래도 AI로 인해 졸업 후 진로가 좁아진 졸업생들의 심정을 생각하지 않고 졸업식장에서 AI를 찬양한 에릭 슈미트 전 구글 CEO는 생각이 짧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가 하면, 한 언론인은 현재 대학교에서 학생들이 AI를 사용해서 과제를 제출하는 일이 보편화한 상황을 언급하며, “AI를 사용해서 학점을 따고 졸업하는 학생들이 야유를 보낸 건 위선”이라고 지적했다.

졸업식 야유 사태는 현재 AI와 관련한 논의가 대부분은 두머(Doomer)와 부머(Boomer), 두 가지 태도로 극명하게 갈리는 상황을 잘 보여줬다. 전자는 AI가 대량 실업을 가져오고, 에너지 소모로 기후 변화를 악화시키는 등, 인류를 위협한다고 생각하는 비관론이고, 후자는 AI가 인류를 노동에서 해방시키고, 질병을 정복하고, 심지어 기후 변화까지 해결해 줄 거라 믿는 낙관론이다.

AI가 가져올 변화를 두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것처럼, 인류가 사는 방식을 바꾼 혁명적인 기술들은 거의 예외없이 ‘두머론’과 ‘부머론’을 불러왔다. 철도가 처음 깔렸을 때도, 자동차가 등장했을 때도, 전기가 보급되었을 때도 사람들은 신기술이 일자리를 빼앗고, 인류를 위협한다고 걱정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기술들을 통해 경제가 성장했고, 인류는 망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머론자들은 “역사를 보면 항상 부머론이 맞았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지금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밀려 사라지는 아날로그 문명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책과 인쇄술도 처음 등장했을 때는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지게 되고, 이를 통해 이단 사상이 확산될 거라는 우려가 컸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사람들이 성직자의 권위보다 책을 더 믿게 되면서 사회 질서가 무너질 거라고 경고도 있었다.

사실 그들의 경고는 맞았다. 유럽은 한 세기가 넘는 종교전쟁에 휩싸였고, 인쇄술은 양 진영이 서로를 극단적으로 혐오하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전쟁을 격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치열했던 ’30년 전쟁’에서 독일 지역은 전체 인구의 20%가 사망했다.) 검증되지 않은 가짜 뉴스가 횡행한 것도 사실이고, 성직자의 권위가 떨어지고, 사회 질서가 무너진 것도 사실이다. 인류가 재난을 극복했다는 것이 재난의 부재를 의미하지 않는다.

과거 기술혁명에 대한 찬양론에서 흔히 간과하는 것이 기술의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다. 사람들은 인쇄술의 효용은 극대화하고, 그 위험은 줄이는 ‘제도’를 만들어냈다. 인쇄허가제를 만들어서 정부나 교회의 허가를 받아야만 책을 인쇄할 수 있게 했고, 문제가 있는 출판물에 대해서는 저자는 물론 인쇄업자도 처벌할 수 있는 인쇄업자 책임제를 도입했다. 출판 전에 내용을 심사하는 ‘검열제도’나 (교회가 정하는) ‘금서 목록’의 경우, 지금은 시민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로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기술이 사회에 주는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시도였다.

인류는 AI라는 소를 죽일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 소가 삶의 터전을 파괴하도록 놔둬서도 안 된다. 누군가 제도의 고삐를 만들어서 그 힘을 사용하면서도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은 본질적으로 그 작업을 할 수 없는 존재이고, 점점 더 막강해지는 기업의 영향력에 휘둘리는 세계 각국의 정부도 그 역할을 해낼 역량이 부족해 보인다.

우리에게 남은 희망은 ‘고객’이 아닌 ‘시민’을 먼저 생각하는 비영리 단체와 활동가들이다. 정부가 기업을 규제할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AI의 피해에 무방비로 노출된 사람들에게 그 위험을 알리고,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제안하고, 이를 법제화하는 건 조직된 시민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비영리 단체가 바로 그렇게 ‘조직된 시민’이다.

기업들은 효율과 이윤을 최대화하는 AI 기술을 개발할 뿐이지만, 그것을 ‘사회 속에서 작동하는’ 기술로 만드는 것은 시민사회의 일이다. 역사를 바꾼 것은 언제나 기술만이 아니었다. 철도를 철도로 만든 것은 선로뿐 아니라 신호체계였고, 자동차를 자동차로 만든 것은 엔진뿐 아니라 교통법규였다. AI 시대에 비영리 단체의 역할은 기술을 막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사회적 합의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놓치는 사람이 없도록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AI 혁명의 성패는 더 뛰어난 모델의 개발이 아니라, 그 기술이 안전하고 공정하게 사회 속에 뿌리내리게 하는데 달려 있다.

 

박상현 | <오터레터> 발행인
뉴미디어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일을 하면서 관련한 글을 쓰다가 2001년부터 ‘세상을 다르게 보는 누군가의 시선을 읽는 데 돈을 지불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구독 기반 매체 <오터레터>를 발행하며 문화, 테크, 정치 분야의 이제 막 떠오르는 이슈를 소개하고 맥락을 연결하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 《나의 팬데믹 일기》 《도시는 다정한 미술관》 《친애하는 슐츠 씨》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모드의 계절》 《라스트 캠페인》 《아날로그의 반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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