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향한 감각만큼은 잃지 말자
정민석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 이사장

“요즘 내가 누구인지, 나의 성정체성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돼요. 나는 어떤 사람일까요. 안전하고 편안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곳이 있을까요?“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이하 띵동)을 찾는 청소년들에게 자주 듣는 질문을 챗GPT에 입력해보았다. 오랜 시간 망설이다 썼을 그 문장에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을 써 내려갔다. 마치 리포트를 작성하듯 개인의 감정을 토닥이는 것도 쉽게 요약 정리가 되어 있고, 띵동을 포함해 성소수자 상담이 가능한 몇 곳을 추천해 주기도 하였다.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 흐르는 긴장감이 존재하진 않았지만, 글만 놓고 보면 상담 실력이 상당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틀린 정보도 적지 않았다. 서로 다른 단체 이름이 뒤섞여 있기도 했고, 이미 활동을 중단한 단체나 성소수자 인권 감수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중앙부처 기관까지 소개하고 있었다.
생성형 AI가 일상에 빠르게 자리 잡으면서 AI를 통해 띵동을 알게 된 청소년 성소수자 수도 점점 늘고 있다. 최근 현장에서 확인된 중요한 변화 중 하나다. 이는 인터넷 검색이나 지인 추천 중심의 상담 경로가 확장된 것으로서 AI를 통해 띵동을 알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사람의 고민은 다 같을 수 없고, 일목요연하게 정리될 수 없는 문제들도 많다 보니 후속 상담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AI의 빠른 답변 속도와 효율에 익숙해진 청소년들은 즉각적인 답변을 기대하곤 한다. 때로는 관계 속에서 부딪히고 상처받으며 배워야 할 문제해결의 경험 자체가 사라지면서, 관계를 맺고 감정을 조율하는 힘의 토대가 약해지기도 한다. 더 나아가 AI가 건네는 무미건조한 따뜻함에 익숙해질수록 사람의 조언을 오히려 불편하게 여기거나, 원하는 답을 얻을 때까지 AI에게 집요하게 질문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물론 AI는 가족이나 친구에게조차 쉽게 고민을 털어놓지 못했던 성소수자들에게 일종의 해방구 같은 역할을 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유대감과 공동체 감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남는다.
질문이 계속 맴돈다. 정부는 인공지능(AI)이 국가 경제 성장을 이끄는 핵심 동력이라고 말하고 있고, 기술도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데, 비영리 활동가로서 이러한 변화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AI를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도구로 인식하는 것 이외에 비영리 섹터가 오랫동안 지켜온 가치에 변화가 감지되지는 않은지, AI 시대에 필요한 비영리의 역할은 무엇이며, 동시에 AI 시대에 맞서 지켜야 할 역할은 무엇인지, 질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띵동의 궁극적인 목표를 떠올릴 때마다 고민은 더 깊어진다. 평등과 인권의 가치는 기술의 발전 속에서도 지켜질 수 있을지, AI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겪는 위기에 무관심했던 청소년 복지 영역과 성소수자 학생을 배제하고 때론 차별에 앞장서 온 학교 문화를 변화시킬 수 있는지, 무엇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은 현실 속에서, AI는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아직은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견고한 차별 앞에 무기력감을 느끼고, 인류애가 사라질 정도의 혐오 표현을 접할 때면 차라리 AI의 요구대로 세상이 움직이면 더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답답함의 다른 표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기술이 해결해 줄 수 없는 문제가 워낙 많다 보니, 효율과 속도의 힘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기도 했다. 만약 기술의 도움으로 트랜스젠더 청소년이라는 이유만으로 쉼터 입소를 거부당하지 않을 수 있다면,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괴롭힘과 폭력에 노출되지 않을 수 있다면,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불안, 우울과 같은 심리적 어려움을 겪게 되지 않을 수 있다면, 기술의 진보와 혁신에 기대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지금의 현실에서 AI가 생활의 편리함과 업무의 효율을 가져다줄 수 있을지언정, 우리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를 대신할 수는 없다.
상담 역시 언젠가 AI가 일정 부분 대체하게 될지 모른다. 사람과의 대화보다 즉각적인 답을 주는 AI 상담이 더 편리하고 덜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만들어지는 온기의 힘을 AI가 대체할 수 없고, 평등하고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는 AI 기술의 발전만으로 저절로 완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AI는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거나 기존의 불평등을 더 강화하기도 한다. 비영리는 AI가 만들어 가는 사회 속에서도 빈틈을 메우고, 사각지대를 발견하며, 사람이 소외되지 않도록 문제를 정의하고 변화의 방향을 찾아야 한다. 업무의 효율을 계속 찾아가되, 사회 구조를 냉정하게 바라보며 사람을 향한 감각만큼은 잃지 않아야 한다.
✍🏻 정민석 |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 이사장
현재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머무는 모든 곳에 인권의 가치가 지켜질 수 있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화해도 ‘띵동’이 해야 할 역할이 있다고 믿고 있으며,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이 선물한 ‘하루’를 소중하게 여기며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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