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비영리의 역할: 더 빠른 기술보다 더 깊은 질문
최문정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석좌교수

미디어에 접속하기만 하면 AI에 대한 글과 영상이 넘쳐난다. 지금 당장 뭐라도 배우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고, 나만 빼고 주변 사람들은 모두 개발자처럼 AI를 사용하는 것 같다. 이렇게 사회의 빠른 변화를 좇으며 기술에 코를 박고 살 거였으면, 애초에 비영리 활동가의 길 대신 영리 회사에 취업해 스펙에 매달리며 숨 가쁘게 달렸을 것 같은데… 그래도 AI가 뭐라고, 두쫀쿠나 버터떡처럼 모두가 아는 시대의 흐름인데 나만 뒤처진 기분이다. 대체 AI 시대에 비영리 활동가인 나는, 무엇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비영리 활동가의 마음에 빙의해 적어 보았다. AI는 자동화와 효율성에 가치를 둔 ‘영리’의 영역인 것 같은데, 비영리 활동가도 AI를 잘 알아야 할까?
여러 가지 일을 척척 해내는 것은 한때 판교 개발자들의 세계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전공이 무엇이든, 조직의 규모가 크든 작든, 누구나 데이터를 분석하고, 앱을 만들고, 문서를 쓰고, 캠페인을 설계하는 시대가 열렸다. 1인 기업과 작은 창업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비영리 현장 역시 예외가 아니다.
문제는 AI를 “쓸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다. 이미 AI는 사적 영역을 넘어 공적 영역, 비영리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복지, 돌봄, 고립, 교육, 기후, 환경, 지역사회, 시민 참여의 현장에 AI가 들어오고 있다. 그렇다면 비영리는 준비되어 있는가. 더 정확히 말하면, 비영리 활동가는 AI를 어떤 가치 위에 올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영리의 세계에서 AI는 주로 ‘효율성’의 언어로 설명된다. 더 빠르게,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산출물을 만들어내는 기술로 AI는 급속히 수용되고 있다. 물론 비영리에도 효율은 필요하다. 한정된 인력과 예산으로 사회문제를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영리의 핵심 가치는 효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비영리는 의미, 관계, 존엄, 사회정의, 신뢰를 중시하는 영역이다. 그래서 비영리에서 AI를 도입할 때 가장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얼마나 쉽고 빠르게”가 아니라 “무엇을 위한 것인가”여야 한다.
인터넷과 모바일 시대를 거쳐 도래한 AI 시대는 비영리 활동가가 다루는 문제의 양상을 전방위적으로 바꾸고 있다. 현장 기록, 상담 지원, 캠페인 기획, 후원자 소통 등에서 AI는 분명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작은 조직이 더 넓은 언어로 자신을 설명하고, 흩어진 자료를 정리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 언어로 번역하는 데에도 큰 힘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시간이 부족해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데이터 분석과 글쓰기, 반복 업무의 자동화도 가능해진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위험도 생긴다. AI가 만들어낸 그럴듯한 문장과 보고서가 현장의 복잡성을 덮어버릴 수 있다. 품질은 낮은데 양만 쏟아지는 결과물, 이른바 ‘워크슬롭(workslop)’은 비영리에도 찾아올 수 있다. 더 많은 문서를 만들지만 더 깊은 이해는 줄어들고, 더 빠르게 응답하지만 소통의 의미는 사라지며, 기존의 디지털 격차 위에 ‘AI 격차’라는 새로운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
특히 공공성과 권리를 다루는 영역에서는 AI의 ‘능력’만큼이나 ‘권위’를 물어야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서비스 대상자를 발굴할 때 ‘AI가 위험군을 얼마나 정확하게 예측하는가’라는 질문보다 먼저, 우리가 AI에게 그런 판단을 맡기기로 사회적으로 합의했는가를 물어야 한다. 예측 정확도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의 삶에 개입할 권한이 자동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비영리 활동가는 바로 이 질문을 사회에 던지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비영리 현장이 AI 시대에 배워야 할 것은 단지 프롬프트 작성법이나 자동화 도구 사용법만이 아니다. 물론 그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문제를 다시 정의하는 능력이다. 내가 풀고 있는 사회문제는 여전히 같은 문제인가. AI를 적용해 더 많이 쓰면 해결될 문제인가, 아니면 오히려 관계와 신뢰, 지역사회가 회복되어야 풀리는 문제인가. 고립 청년의 문제를 예로 들면, AI 상담 챗봇은 일부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고립의 근본 원인은 사라진 사회자본과 약해진 공동체일 수 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고립 청년을 AI 상담 챗봇에 맡겨 무인 시스템으로 자동화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서비스 시스템 전체를 새롭게 설계해 AI 챗봇과 휴먼 서비스가 시너지를 내도록 하고, 지역사회 차원의 사회적 자본을 키우는 접근이다.
비영리 활동가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AI를 두려워하지 말되, 무작정 따라가지도 않았으면 한다. AI를 잘 쓰는 사람은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AI 시대에 좋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여전히 귀하다. 나무에 어떤 물을 주느냐에 따라 숲의 모양이 달라지듯, 우리가 AI에 어떤 가치와 질문을 입력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AI와 사회도 달라진다. 비영리는 AI 시대의 주변부가 아니다. 오히려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자리다.
AI 시대, 인간은 더 행복해지고 있는가? AI는 더 약한 사람의 존엄을 지키고 있는가? 우리는 AI를 통제하고 있는가, 협업하고 있는가, 아니면 어느새 통제당하고 있는가?
✍🏻 최문정 |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석좌교수
KAIST에서 2014년부터 Aging & Technology Policy Lab (고령사회 기술복지 정책 실험실)을 창립해서 연구책임자로 연구그룹을 이끌고 있습니다. AI를 포함한 새로운 기술들이 개발되고 선택되어 활용될 때 사회정의의 관점에서 사회적 약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기술을 공공선을 위해 개발∙활용되기 위해 필요한 증거기반 정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유엔(UN) 자문위원이자 OECD·한국 디지털사회 이니셔티브(OECD–Korea Digital Society Initiative) 의장으로 활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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