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 너머의 가치: 협동조합 현장에서 바라본 AI 시대

유정선 두레생협연합회 MD

최근 몇 년 사이 AI는 우리의 일상과 업무 환경을 빠르게 바꾸어 놓고 있다. 처음 AI를 업무에 활용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단순했다. “정말 빠르다”는 감탄이었다. 조합원들의 소비 패턴을 분석하고, 매출 전략을 세우고, 해외 생산지와의 영문 계약서를 검토하고, 긴 보고서를 요약하는 일까지. 상품 소개 문구 하나를 다듬는 데에도 AI는 놀라울 만큼 빠르게 결과를 만들어냈다. 예전 같으면 몇 시간씩 걸리던 작업들이 이제는 훨씬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해졌다.

나는 협동조합에서 무역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베트남, 일본,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의 협동조합 및 생산자들과 교류하며, 해외 협동조합 간 직거래를 통해 국내에는 없는 다양한 생활재와 가공식품을 수입하고 있다. 동시에 우리나라의 좋은 농산물과 가공식품을 해외에 소개하고 수출하는 일도 하고 있다. 단순히 상품만 오가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생산 과정과 가치, 생산자들의 이야기를 조합원들에게 전달하는 일 역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협동조합은 일반 기업처럼 효율과 성과만을 중심에 두기보다는, 환경과 사람, 그리고 우리 사회를 함께 고민하며 더 나은 삶의 방식을 만들어가기 위해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에 가깝다. 물론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영리 활동을 통해 일정한 이익을 창출해야 하고, 매출에 대한 현실적인 압박 역시 존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른 성장이나 공격적인 마케팅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신뢰, 입소문을 통해 천천히 성장해 온 곳이다. 그야말로 ‘사람 중심’의 조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AI는 분명 내 업무를 많이 바꾸어 놓았다. 단순히 일의 속도가 빨라진 것만은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업무적인 고민이나 아이디어를 선배나 동료보다 AI와 더 자주 이야기하고 있었다. AI를 활용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질수록, 이전에는 선배들에게 묻고 배우며 익혀가던 일의 감각과 고민들을 이제는 AI에게 의지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다 문득 일을 하다가도 “이게 맞는 방향일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물론 AI는 빠르고 효율적이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방향과 가치를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지까지 대신 결정해주지는 않는다. 그 질문은 결국 우리 스스로 계속 던지고 답을 찾아가야 하는 몫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AI를 사용할수록 오히려 더 선명하게 느끼게 되는 것도 있다. 어떤 일들은 끝내 인간만이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종종 해외 생산지를 방문한다. 몇 시간씩 차를 타고 농장을 찾아가 생산자들을 만나고, 함께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듣는다. 그 과정에서 나는 단순히 상품의 품질만 확인하는 것이 아니다. 생산자들이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기후 변화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왜 협동조합 방식으로 생산을 이어가고 있는지를 직접 보고 듣는다.

그 현장의 공기와 표정, 관계의 온도는 데이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공정무역이나 협동조합 간 무역은 단순히 “더 저렴하게 수입하는 방식”이 아니다. 우리는 늘 질문한다.

“이 거래는 누구를 위한 거래인가?”
“생산자는 지속 가능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가?”
“소비자는 이 상품의 가치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가?”
“우리는 왜 이 생산자와 계속 거래하려 하는가?”

AI는 가장 효율적인 선택지를 제안할 수는 있다. 어떤 상품이 더 많이 팔릴지, 어떤 문장이 클릭률이 높을지, 어떤 가격이 소비자 반응이 좋을지는 분석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이 ‘좋은 선택’인지는 답하지 못한다. 그것은 결국 사람이 고민하고 판단해야 하는 영역이다.

나는 오히려 AI 시대일수록 비영리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술은 점점 더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사회는 그 속도를 따라가기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더 자주 질문해야 한다.

“이 기술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누가 이 변화에서 소외되는가?”
“효율 뒤에서 사라지는 가치는 없는가?”

특히 비영리 영역은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가치를 다루는 곳이다. 돌봄, 연대, 신뢰, 공동체 같은 가치들은 빠르게 측정되거나 데이터로 정리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회를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들 역시 이런 가치들이다.

비영리 활동은 어느 정도 비효율적인 영역이기도 하다. 사람을 설득하고 기다리며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바로 그 과정 안에서 신뢰와 공동체가 만들어진다.

나는 앞으로 비영리 현장에서도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중요한 것은 AI가 우리의 생각을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더 깊은 질문과 고민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AI를 얼마나 잘 쓰느냐보다, 어떤 방향과 가치 안에서 사용하느냐일 것이다.

AI 덕분에 반복적인 업무 시간이 줄어든다면, 그만큼 남는 시간은 동료들과 더 많이 이야기하고, 더 재미있고 신나는 활동들을 상상하는 데 쓰였으면 좋겠다. 어떤 방식이 더 사람답고 즐거운 활동인지 함께 고민하면서 말이다.

AI는 분명 훌륭한 도구다. 하지만 방향을 정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방향 속에 ‘효율’만이 아니라 ‘사람’ 역시 끝까지 남아 있기를 바란다.

 

✍🏻 유정선 | 두레생협연합회 MD
해외 협동조합 및 생산자들과 교류하며 무역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의 힘을 믿으며, 다양한 상상력으로 더 즐겁고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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