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기술은, 모두가 배워야 하는 기술이 아니다
전유진 여성을 위한 열린 기술랩 대표

기술은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다. 이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기술 문화를 좀 더 수평적이고 개방적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로 활동을 시작한 지 올해로 9년째다. 더 많은 이들이 기술을 덜 위계적으로 접할 수 있도록 용접, 코딩, 금속 가공, 전자 기술 등 다양한 기술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심리적 어려움을 해소하는 워크숍, 연구 모임, 키트, 출판물 등을 만들어 왔다. 몇 년 전부터 AI가 챗봇의 형태로 대중화되면서, 생성형 AI 교육과정의 설계를 의뢰받거나 “AI 접근성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하는 역할로 초대받는 일도 잦아졌다.
기술 접근성을 고민하고 실천해 온 사람으로서, AI 역시 젠더·나이·인종·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데 당연히 동의한다. 그런데 유독 AI 앞에서는 망설이게 되는 지점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AI 기술에 대한 열풍이 단순히 유행을 넘어서, 강박으로도 작동한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기술이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특정 기술을 모두가 반드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현재 AI를 무조건 배워야 할 것 같은 분위기와 기조를 우리 사회 도처에서 목격한다. 정부 기관, 재단, 기업이 앞다투어 AI 활용을 권하고, 소셜미디어와 우리 랩에서 마주하는 개개인의 반응에서도 같은 공기를 읽는다. 나는 그 물결에 섞이지 못하는 기름방울처럼 이런 질문을 품기 시작했다. 왜 모두가 이 기술을 써야 하는가? 모두를 위한 기술과 모두가 배워야 하는 기술은 분명 다르지 않나?
요즘 들어 2000년대 초 컴퓨터과학을 공부하며, 인공지능 수업을 듣던 때가 자주 떠오른다. 그때는 인공지능이 이런 LLM 기반의 챗봇 서비스의 모습으로 대중화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막연하게나마 복잡한 연산을 빠르게 처리하고 선택지를 넓혀, 결국 인간의 고된 노동을 덜어주는 기술을 기대했다. 실제로 지금 챗봇은 내 코딩 시간을 몇 배로 줄여주고, 논문 읽기와 번역 등의 업무를 돕는다. 그런데 지난해 여러 조사와 기사를 통해 챗봇과 생성형 AI 서비스의 사용자 패턴에 관한 조사 결과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많은 이들이 생성형 AI를 상담(therapy)과 동반(companionship)을 목적으로 쓰고 있었다.[1] 비슷한 시기, 한 챗봇 서비스가 지나친 아첨으로 문제가 되자 다음 모델에서 그 성향을 걷어냈다. 그러자 이용자들은 “예전 모델을 돌려달라”며 반발했고, 회사는 하루 만에 유료 구독자에 한해 옛 모델을 되살렸다.[2] 결국 많은 이들이 AI에 기대하는 것은 업무 생산성보다 감정적인 지지 쪽이 더 크다는 의미일까? 소비자의 기대와 니즈는 AI 챗봇을 점점 더 감정적으로 기대고 싶도록, 의지하고 싶은 형태로 발전시키는 추동력이 될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서비스는 돈을 내는 사람이 원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또한 지금 우리가 ‘AI’라고 할 때, 챗봇의 형태만을 떠올리는 현상 또한 문제적으로 보인다. 왜 AI는 챗봇이 되었을까? 어떤 기술이 극단적으로 보편화되면, 그 기술은 자연스럽게 권력을 갖는다. 그런 사례로 ‘인터넷’을 들 수가 있는데, 인터넷이 우리 사회의 디폴트 기술이 되면서 큰 편리함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는 상태는 거의 재난에 가까운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이처럼 어떤 기술의 극단적인 보편화는 철학자 육후이가 ‘단일기술문화’라고 지적한 비판과도 연결된다.[3] 다른 방식의 기술이 존재할 자리가 사라지는 것, 곧 기술다양성의 부재로 이어진다. 그런데 사실은 ‘누구나 AI를 쓴다’는 감각에는 거품이 있다. 전 세계 인구 중 무료 챗봇이라도 써본 적 있는 사람은 16%, 돈을 내고 쓰는 사람은 0.3%에 그친다.[4] 인터넷조차 전 인류의 4분의 1이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5] 현대 사회에서 장애는 개인의 신체적·정신적 결함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는 사회로 인해 발생하는 어긋남으로 이해된다. 누군가에게는 몇 분이면 끝나는 인터넷 구매가 시각장애인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것처럼,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 격차는 어떤 지점에서 오히려 크게 벌어진다.
이런 측면에서 ‘모두를 위한 기술’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나는 그 질문을 하기 전에 먼저 되짚고 싶다. AI는 정말 ‘모두가 배워야 하는 기술’인가. 그리고 이 물음은 일상의 층위에서 한 번 더 좁혀질 수 있다. 챗봇이나 생성형 AI를 활용하기 전에 ‘지금 이 일에 AI를 써야만 하는가’를 먼저 묻는 것이다. AI 서비스 하나를 돌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지구의 자원과 사람의 노동력이 착취적으로 쓰이는지 이제는 굳이 나열하지 않아도 우리는 알고 있다. 지금 이 기술을 쓰려는 이유가, 그것을 위해 소모될 자원에 과연 합당한 것인지를 우리는 되물어야 한다.
[1] Marc Zao-Sanders, “How People Are Really Using Gen AI in 2025,” 《Harvard Business Review》, 2025년 4월 9일.
[2] Victor Tangermann, “OpenAI Announces That It’s Making GPT-5 More Sycophantic After User Backlash,” 《Futurism》, 2025년 8월 18일.
[3] 육후이(Yuk Hui, 허욱), 『재귀성과 우연성』, 조형준 옮김, 새물결, 2023. 원제 Recursivity and Contingency (2019).
[4] 김민수, 「[분석] “전 세계 84%는 AI 미경험자”… 81억 인구 중 ‘유료 사용자’는 고작 0.3%뿐」, 《아웃소싱타임스》, 2026년 2월 25일.
해당 수치는 공식 통계가 아니라, 유엔의 2026년 세계 인구 전망치와 주요 AI 기업의 구독 지표를 종합해 산출한 추정치다. 유료 사용자 0.3%는 2025년 말 OpenAI가 밝힌 챗GPT 플러스 구독자 약 2,000만 명에 경쟁사 추정치를 합산한 값이다.
[5] 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 Union, Measuring Digital Development: Facts and Figures 2025, 2025년 11월.
ITU는 유엔 산하 디지털 기술 전문기구다. 2025년 기준 전 세계 인구의 74%인 60억 명이 인터넷을 사용하며, 22억 명은 여전히 접속하지 못한다.
✍ 전유진 | 여성을 위한 열린 기술랩 대표
컴퓨터와 음악을 전공했으며, 영화음악을 시작으로 사운드, 키네틱, 전자, 미디어 기술에 기반한 창작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익스프레스’를 결성하여 다양한 매체가 결합된 서사 중심의 프로젝트를 발표했고, ‘여성을 위한 열린 기술랩’을 설립해 페미니즘적 실천으로서 기술을 매개해 왔다.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기술 읽기를 제안하며, 출판 프로젝트 《펨텍톡》을 통해 고유한 기술 비평의 언어를 만들어가고 있다. womanopentechlab.kr, seoulexpres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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