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 공유, 그리고 연대
최영준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복지국가연구센터 소장

지난 2월부터 다음세대재단과 함께 내내 분주했습니다. 비영리 활동가/종사자분들이 어떻게 AI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지, 어떻게 AI를 사용하고 있는지, 어떤 기대와 우려를 가지고 있는지를 조사하고, 분석하며, 또 많은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오늘은 설문조사에 나온 여러 숫자들 대신, 마음 속에 들었던 단상을 나누고 싶습니다.
2026년 반을 조금 넘은 지금, 인공지능(AI)은 또 발전했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AI 뿐만 아니라 여러 산업 영역에서 성장 속도가 가히 놀랍습니다. AI와 함께 살아가는 우리 일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저는 산업혁명 시기 기계의 발명, 컴퓨터나 인터넷의 도입 때처럼 AI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AI는 에이전트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에이전트란 지금까지의 기술이 도구였던 것에 비해 AI는 의사결정과 실행의 일부나 전체를 대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 차이가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미 AI에 과도한 의존을 우려하고 있고, 이 역시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김대식 선생님의 지적대로 어쩌면 인간의 영향력은 역사상 최고점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우리는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것일까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유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AI가 우리가 하는 일에 깊숙이 들어올 것입니다. 아니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 긍정적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하나는 AI를 내 일을 더 풍부하게 하는데 활용하는 것입니다. 실제 많은 비영리 활동가들이 과거에 할 수 없는 일들을 하게 하고, 업무의 질을 높이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일이 대체되거나 줄어든만큼 더 중요한 새로운 업무를 찾아가는 시나리오입니다. 실제 생각해보면 우리는 비본질적인 일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쓰고 있습니다. AI가 확보해준 시간을 더 의미있는 일에 쓴다면 어떨까요?
하지만, 긍정적인 시나리오가 저절로 오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는 일을 잃어버릴 수도, 혹은 일의 의미를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 차이는 사유와 공유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사유는 생각하고 뒤돌아보며 앞의 방향을 생각하는 일입니다. 내가 하는 일, 우리 조직이 지향하는 방향, 변화해가는 세상, 내가 만나는 시민들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활동가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일과 길을 의미있게 찾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사유가 혼자만의 생각으로만 끝나서는 안됩니다. 자신의 사유를 동료와 조직, 그리고 내가 만나는 이들과 함께 나누지 않는다면 사유는 나 혼자만의 상상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사유가 변화를 만들어내려면 소통하고 나누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AI가 만들어낸 변화가 개인과 조직의 성장을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사유하는 조직 문화가 꼭 필요합니다. 구성원들에게 AI를 활용하여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일하기를 몰아붙이기보다는 효율이 만들어낸 빈 공간에 사유와 쉼을 허락하여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비영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연대입니다. 서로가 신뢰하지 못하고, 인간이 인간을 부담스러워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세대 간 갈등, 젠더 갈등, 이주민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등 다양한 마찰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한 최근의 설문조사에서 우리 시민들은 정부나 정치인보다 AI를 더 신뢰한다고 합니다. 우리 스스로 인간의 위상을 내리고, 그 자리에 AI를 대치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은지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비영리가 공통적으로 가진 가장 중요한 미션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신뢰하게 하는 것, 우리 옆에 있는 이들과 함께 연대하여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 이것이 실패한다면, 어쩌면 AI 시대에 우리의 미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현장에 계신 여러분들이 소중하고, 또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책 추천을 부탁받았습니다. 저는 AI에 관련된 책보다 제가 사랑하는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사유와 성찰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대인거 같아서요. 시 한편 읊고 물러가겠습니다.
날이 덥습니다. 모두 건강하세요.
자화상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최영준 |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복지국가연구센터 소장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이며, 정책을 비교적 관점으로 바라보며 분석하는 종합 사회과학인입니다. 모든 이들은 행복할 권리가 있으며, 자유롭고 안정된 개인들이 새로운 사회경제체제의 핵심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들의 자유안정성을 증진시키는 제도를 연구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입니다. 자유로운 개인과 큰 국가가 어떻게 양립할 수 있을지, 혁신과 복지가 어떻게 선순환 할 수 있을지, 연대와 협력이 개인주의와 어떻게 상생 할 수 있을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