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문제를 보는 사람들
김윤영 전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기술은 늘 새로운 가능성을 약속한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것은 기술 그 자체보다 오래도록 보이지 않던 문제를 발견하는 사람들이다. 올해 초 열린 Claude Code 해커톤의 우승자는 기술·개발자가 아니었다. AI 기술보다는 현장을 먼저 읽어낸 사람, 오랫동안 한 분야의 결을 다듬어 온 이들이 상위권을 휩쓸었다.
1위 수상자는 캘리포니아에서 일하는 건설업자였다. 2018년 이후 발급된 42만 9천 건의 건축 허가 가운데 약 90%가 수정 요청과 함께 반려되고, 그때마다 공사는 수주씩 멈춰 섰다. 그 병목을 오래 지켜본 그는 건축 도면을 읽고 캘리포니아 주법 28개 조항과 자동으로 대조한 뒤 답변서까지 작성하는 AI 시스템을 만들었다. 현장에서 가장 익숙했던 문제가 새로운 해결책의 출발점이 되었다.
상위 입상자 가운데는 열두 살 딸을 위해 만든 서비스도 있었다. 아이들이 블록을 조립하듯 프로그램을 만들면 뒤에서 AI가 실제 코드를 생성했다. 코딩을 배우는 과정의 문턱을 낮추려는 시도였다. 또 다른 입상자는 심장내과 의사였는데 그는 환자들이 진료실 문을 나서는 순간 의학 용어와 함께 치료 계획도 희미해지는 모습을 보아왔다. 그래서 진료 내용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주고, 건강 데이터를 바탕으로 후속 관리를 이어가는 서비스를 만들었다. 의사가 환자 곁에 더 오래 머물고 싶었던 시간을 AI가 대신 채우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장면은 AI 시대에 무엇이 중요한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기술의 수준보다 필요한 것은 문제를 발견하는 눈이다. 현장의 경험과 오랜 관찰은 여전히 중요한 자산인 셈이다. 어쩌면 비영리 현장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복지관과 지역사회, 시민단체의 일상에도 수많은 병목이 존재한다. 많은 서류를 여러 번 제출해야 하는 사람, 필요한 서비스를 알지 못하는 사람,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도 제도 밖에 머무는 사람들이 있다. AI는 이러한 문제를 발견하고 연결하는 데 일정 부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행정의 시간을 줄이고 정보의 문턱을 낮추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더 빨리 찾아낼 수도 있다.
그러나 복지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종종 데이터보다 이야기로 먼저 다가온다. 전기·수도 요금 체납 기록은 남지만 왜 그 사람이 전화를 받지 않는지는 남지 않는다. 건강보험료 연체는 포착되지만 왜 이웃과의 관계가 끊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고독과 단절은 대개 행정 데이터의 빈칸에 머물기에 복지는 늘 숫자와 이야기 사이를 오가는 일이다.
이렇게 AI는 신호를 발견할 수 있지만 문을 두드리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일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신뢰를 쌓고 관계를 회복하는 일도 사람의 몫이다. 디지털의 눈이 더 넓고 멀리 볼 수 있다면, 사람의 손은 더 깊고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복지에서 AI의 역할은 사람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손길이 닿을 수 있도록 길을 비추는 데 있을 것이다.
202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권력과 진보』의 저자 대런 아세모글루와 사이먼 존슨은 기술의 역사가 곧 번영의 역사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어떤 기술은 소수의 권력을 키웠고, 어떤 기술은 더 많은 사람의 삶을 바꾸었으며 이 차이는 기술보다는 인간의 선택에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AI 연구자 스튜어트 러셀은 『어떻게 인간과 공존하는 인공지능을 만들 것인가』에서 중요한 것은 더 똑똑한 AI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인간의 가치에 귀 기울이는 AI를 만드는 일이라고 말한다. 결국 기술의 방향을 정하는 것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사람인 셈이다.
AI 시대를 맞아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더 정교한 알고리즘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더 나은 사회는 기술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구를 위해 사용할 것인지, 누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인지, 문제를 정의하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는 여전히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AI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다. 현장을 오래 지켜본 사람,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발견하는 사람, 그리고 그 문제를 함께 풀어보자고 말하는 사람이다. AI 시대의 혁신은 가장 뛰어난 알고리즘과 데이터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오래 들여다본 현장의 질문에서 시작될 것이다.
✍🏻 김윤영 | 전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AI와 사회정책, 사회서비스, 비교사회정책을 연구한다.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AI와 사회과학방법론』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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