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I 시대의 시작, 우리 모두의 새로운 숙제

류정혜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산업생태계 위원

비영리의 오래된 질문이 사회 전체의 질문이 될 때

2026년 9월 3일,오픈AI가 GPT-6 아스트라(Astra)를 공개했다. 그레그 브록먼 사장은 AGI 시대에 온 걸 환영한다고 했다. 사흘 뒤인 9월 6일,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자신의 X 계정에 “AGI가 도착했다.” 며 오픈 AI를 축하했다. 먼 미래를 설명하던 단어가 며칠 사이 오늘의 단어가 되었다.

정말 범용인공지능의 문턱을 넘었는지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하지만 그 소식을 듣는 우리의 마음은 다르다. ‘이제 귀찮은 일을 안 해도 되겠네’라는 반가움 뒤로 ‘그런데 내 일도 귀찮은 일에 포함되나’라는 걱정이 따라온다. 기술의 발전은 환영하지만, 내 출입증까지 반납하고 싶은 것은 아니니까.

모든 일이 곧 사라진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더 적은 인간 노동으로 더 많은 것을 생산할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AI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해내는지와 함께, 사람이 덜 일해도 되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물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일이 우리에게 무엇이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일자리에서 월급만 받은 것이 아니다. 일은 생활에 필요한 자원에 접근하는 소득의 통로였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일을 한다는 인정과 자기 가치감을 얻는 자리였다. 동료와 투덜대고 함께 문제를 풀면서 소속을 경험했다. 출근과 퇴근, 새로운 배움과 다음 해의 계획은 하루와 미래에 생활의 구조를 만들어 주었다. 월요일은 싫지만, 월요일이 있다는 사실이 삶의 달력을 잡아주기도 했다. 물론 모든 일자리가 이런 선물을 골고루 주지는 않았다. 관계 대신 상처를, 성장 대신 소진을 남기는 일도 있었다. 가족과 지역사회, 시민활동 역시 삶의 중요한 기반이었다. 그럼에도 현대사회는 소득과 인정, 소속과 생활의 구조를 상당 부분 일자리 하나에 묶어두었다.

기술이 노동을 덜어준다고 그 자리에 행복이 자동으로 채워지지 않는 이유다. 생산에 필요한 노동이 줄어도 사람에게 필요한 생계와 존엄, 관계와 삶의 방향은 줄어들지 않는다. 생산이 늘어나는 것과 누구나 그 성과를 누리는 것도 다른 문제다. 소득을 보장할 제도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통장에 돈이 들어온다고 나머지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는 사람에게 억지로 일을 남겨두는 것이 아니다. 일자리가 맡아온 삶의 조건들을 더 다양한 경로로 보장하는 것이다. 참 쉽지않은 숙제이다. 현재 나오는 담론들이 아직 추상적이고 한정적인 이유이다.그런데 미래의 새로운 질문처럼 보이는 이 숙제를 오래 붙들어 온 사람들이 있다. 바로 비영리 현장의 활동가들이다.

돈을 벌기 어렵다는 이유로 존엄까지 작아져도 되는가. 돌봄처럼 사회에 꼭 필요하지만 충분히 보상받지 못하는 기여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도움받는 사람도 자기 삶의 결정에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가. 직장 밖에서도 관계를 맺고 배우며 내일을 계획할 자리는 어디에 있는가. 비영리 현장은 시장의 보상과 기존 제도만으로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삶 속에서 이런 질문을 제기하고 솔루션을 사회와 함께 풀어 왔다.

지원금을 연결하면서 관계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고, 숫자로 설명하기 어려운 변화를 지키려 애써왔다. 실패하면서 좋은 의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도 배웠다. 그렇게 쌓인 것은 선한 마음만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필요를 발견하고, 사람을 해결의 주체로 세우며, 가격표가 없는 가치를 함께 유지하는 경험이다.

AGI는 이 질문을 처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 시대가 지금까지 비영리 현장의 과제로 여겨졌던 질문을 사회 전체 더 많은 분야가 자신의 숙제로 받아들이도록 재촉한다. 이는 모두가 같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뜻은 아니다. 변화의 충격은 자산과 직업, 사회적 조건에 따라 다를 것이다. 다만 직업과 소득만으로 사람의 몫과 자리를 설명하기 어려워질수록, 생산성 밖의 존엄과 고용 밖의 참여를 고민해 온 경험에서 배워야 할 범위는 넓어진다.

기업은 자동화로 절약한 비용뿐 아니라 그 성과와 전환의 부담을 어떻게 나눌지 고민해야 한다. 교육은 취업 경쟁력과 함께 사람이 스스로 배우고 시간을 조직하며 공동체에 참여할 힘을 길러야 한다. 정부와 지역사회는 소득보장에 더해, 고용 밖에서도 관계를 맺고 기여할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비영리의 질문이 기업의 경영 과제가 되고, 학교의 교육 과제가 되며, 사회 전체의 제도 설계 과제가 되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새로운 해법과 과제를 사회 많은 분야에서 함께 풀어나가야 한다.

비영리가 모든 해답을 가지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기업과 정부가 가치를 몰랐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시장과 고용이 해결하지 못한 삶을 가까이에서 살펴온 경험이 빠진다면, 새로운 사회의 설계도에도 익숙한 빈칸이 남을 수 있다.그래서 비영리 활동가들에게 조금 더 넓은 시야를 제안하고 싶다.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서 눈을 돌리자는 말이 아니다. 그 사람의 삶에서 발견한 질문을 교육과 기업, 기술과 정책으로 연결하자는 뜻이다. 현장의 경험을 다른 분야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원칙으로 정리하고, 기술자·연구자·기업인·정책 담당자와 해법을 실험해 보면 훨씬 그들의 경험이 값지게 쓰일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 사회 역시 활동가들이 변화의 뒤편에서 문제를 수습하는 데 머물지 않고, 처음부터 해법을 함께 설계할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가 준비할 것은 인간이 덜 일하는 사회만이 아니다. 덜 일하더라도 생계를 보장받고, 인간답게 살 권리를 존중받고, 연결되어 자기 삶을 꾸려갈 수 있는 사회다. 더 강력한 지능은 그 가능성을 넓힐 수 있다. 어떤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지는 우리의 몫이다.

비영리의 오래된 질문이 이제 우리 모두의 숙제가 되고 있다. 다행히 우리는 빈 종이 앞에 앉아 있지 않다. 현장에서 쌓아온 질문과 경험이 있다. 이제 그 소중한 출발점을 조금 더 넓은 식탁에 올려놓자. 함께 답을 찾을 사람들의 자리를 마련하면서.

 

✍ 류정혜 |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산업생태계 위원
네이버, 토스랩, 카카오페이지등 주요 디지털 플랫폼 기업에서 약 20년간 다양한 혁신 프로젝트를 이끌어 왔으며,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서는 미래전략 담당으로 AI를 활용한 콘텐츠 및 팬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등 새로운 기술과 콘텐츠의 접점을 만들어 왔다. 현재는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위원이자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 AI미래포럼 공동의장으로 활동하며, ‘모두를 위한 AI’의 올바른 확산과 AI 생태계 주요 정책에 대한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 AI 스타트업 확산과 콘텐츠 산업 미래 전략에 특히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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