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준비된 조직을 더 강하게 만든다
최성숙 신림종합사회복지관 관장
AI보다 먼저 시작된 변화
요즘 우리 복지관에서는 AI를 활용해 회의록을 정리하고 사업계획과 보고서를 작성한다. 직원들이 업무에 필요한 도구를 직접 웹 앱으로 만들고 있으며, 현재 80여 개가 실제 업무에 활용되고 있다. 이런 모습만 보면 AI라는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인 기관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지금의 변화는 AI보다 훨씬 이전에 시작되었다.
2015년 우리는 ‘스마트워크’ 업무지침을 만들었다. 모바일 전자결재 시스템을 도입하고 직원들에게 노트북과 태블릿을 제공했으며, NAS 서버를 구축해 공간의 제약 없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목적은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아니었다.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고 어디서든 협업하며, 개인의 경험과 노하우가 조직 안에서 공유되고 이어지는 일하는 방식을 만들고 싶었다. 이렇게 만들어 온 업무환경과 일하는 방식은 2020년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힘을 발휘했다. 전 직원이 2주간 재택근무를 해야 했지만 업무와 서비스는 중단되지 않았다. 그때 우리는 기술을 갖추는 것보다 그것을 일상적으로 활용하며 조직의 역량으로 만들어 온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몇 사람의 AI에서, 함께 배우는 조직으로
그래서 AI가 확산되기 시작한 2024년부터 우리는 이를 단순히 새로운 도구를 배우는 일로 보지 않았다. AI 활용을 기관의 중점 운영 방향으로 정하고 전 직원이 함께 배우고 실험할 수 있도록 교육과 팀별 학습, 전문가 자문, 세미나와 컨퍼런스 참여를 이어갔다. 스마트워크 추진팀도 운영하며 몇 사람의 관심과 경험에 머물지 않고 조직 전체의 역량으로 축적되도록 했다. 그 과정에서 오히려 기술보다 조직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담당자가 바뀌면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일, 사람마다 다른 업무방식, 반복되는 행정 등 그동안 익숙해서 지나쳤던 문제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왜 우리는 이렇게 일해 왔는가’를 질문하며 일의 구조를 다시 설계하고 있다.
또 하나 배운 것은 기술의 속도가 곧 조직의 속도는 아니라는 점이다. 새로운 기술은 누군가에게는 흥미로운 기회지만, 누군가에게는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한 변화다. 몇 사람이 앞서가기보다 구성원이 함께 배우고 시행착오를 나누며 조직의 변화로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 다른 학습의 속도를 존중하며 함께 가는 과정을 만드는 것, 그것도 AI 시대 리더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줄어든 행정만큼 사람 곁으로
AI로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더 중요해지는 질문이 있다.
“할 수 있다면, 모두 해야 하는가.”
우리는 문서 작성과 정보 분석, 반복되는 기록과 행정에는 AI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의 표정을 읽고 한 사람의 삶을 그가 살아온 맥락 속에서 이해하며 관계를 맺는 것, 필요한 판단을 내리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것까지 기술에 맡길 수는 없다.
AI 시대의 전문성은 기술을 얼마나 능숙하게 사용하는가에만 있지 않다. 기술의 가능성과 한계를 이해하고, 어디까지 활용할 것인지 판단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할 수 있는 것’은 계속 늘어나겠지만, ‘해야 하는 것’을 결정하는 일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그렇다면 AI가 덜어준 시간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더 많은 문서를 만들고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이 답은 아닐 것이다. 행정이 줄어든 만큼 주민을 만나고, 동료와 깊이 고민하고, 지역사회의 변화를 살피며, 아직 제도가 닿지 못한 주민의 어려움과 새롭게 나타나는 사회문제를 먼저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10여 년의 경험을 돌아보며 내가 그리는 AI 시대 비영리 조직은 기술을 잘 쓰는 데 그치지 않고, 기술이 만들어 준 여유를 사람과 현장을 위해 쓸 줄 아는 조직이다. 최근 읽은 『생명경영원칙』의 ‘불변으로 만변에 대응한다’라는 말에 깊이 공감했다. 기술은 앞으로도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빠르게 변할 것이다. 그럴수록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는 것보다,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아는 일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더 오래된 질문을 붙들고 싶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는가.”
이 질문이 분명하다면 새로운 기술을 무조건 따라가기보다, 우리의 가치와 목적에 맞게 선택하고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변하는 기술에 유연하게 대응하되, 사람과 사회의 변화를 위해 존재한다는 우리의 이유는 놓치지 않는 것. 그것이 AI 시대를 살아가는 비영리에게 필요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 최성숙 | 신림종합사회복지관 관장
34년간 사회복지 현장에서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응하며 새로운 실천을 모색하고 조직혁신을 이어왔다. ‘인간 존엄과 사회정의의 가치를 바탕으로 사회변화를 위해 행동하는 사회복지사’를 지향하며, 최근에는 AI 시대 사회복지 조직의 변화와 사람 중심 복지경영을 고민하고 있다.
📚 칼럼과 함께 읽을 추천도서 바로가기
사회복지사가 바이브 코딩까지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