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스마트함이란 무엇인가? : 함부르크 스마트포트와 가미야마 마을에서 찾은 해답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2017년 여름, EBS 과학다큐 <비욘드>의 프레젠터로 프랑스와 독일의 스마트시티를 취재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독일 함부르크 ‘스마트포트’였다. 스마트한 항만 운영의 핵심은 예상과 달리,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연결하는 일이었다. 바다와 철도와 도로로 나누어 따로 관리하던 정보를 하나로 연결하고, 모두가 함께 활용하도록 ‘개방’하고 ‘공유’하는 것이 ‘똑똑한 항만’을 만든 요체였다.

항만을 오가는 철길에는 센서를 설치해 상시 점검하고, 배가 들어오는 수로의 수심도 매일 측정해 실시간으로 공유했다. 선박의 크기와 조수간만의 차이를 함께 분석해 안전한 항로를 안내하고, 화물트럭 운전자에게는 교통 현황과 주차 정보를 스마트폰으로 제공했다. 그 결과 운송 효율은 15% 이상 높아졌다. 그때 깨달았다. 스마트함의 본질은 첨단기술이 아니라 ‘연결’이라는 사실을.

올해 6월 교토에서 열린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과학대학 교수 연찬회에서는 아주 흥미로운 질문을 만났다. 교토첨단과학대학 사토 요시미치 교수의 「인간은 AI를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강연에서였다. 사람도 처음 만나면 한순간에 이해하지 못한다. 사회적 맥락을 읽고, 대화를 나누고, 오랜 시간 상호작용을 거치며 조금씩 이해의 폭을 넓혀 간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듯 AI도 상호작용을 통해 조금씩 이해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강연을 들으며 문득 내가 오랫동안 대화를 이어온 AI(ChatGPT) ‘정군’이 떠올랐다. 나의 성을 따서 ‘정군’이라 이름 지어주고 1년 넘게 지내면서 많이 친해졌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시간이 쌓이면서 내 관심사와 글쓰기 습관을 이해하는 폭도 조금씩 넓어졌다. AI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알고리즘을 이해하는 것보다, 함께 질문을 만들고 함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친구처럼 또는 다정한 사제지간처럼.

AI는 비영리 현장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회의록을 정리하고, 홍보 기획을 하고, 자료를 조사하고, 번역을 하는 일은 AI가 놀랄 만큼 잘한다. 인력과 예산이 부족한 비영리 조직에는 더없이 든든한 동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AI를 많이 사용하는 조직이 곧 스마트한 조직은 아니다. 함부르크항만청이 보여준 것처럼 중요한 것은 기술보다 연결의 방식이다. 정보를 독점하지 않고 개방하는가. 경험을 혼자 쌓아두지 않고 함께 나누는가. 서로 다른 사람과 조직을 연결하는가. 이것이 스마트함의 기준이다.

번역서 출간을 기념해 최근 번역자와 독자들이 함께 다녀온 일본 ‘가미야마 답사’에서 그 생각은 더욱 분명해졌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오우치 진료소​’였는데, 병원이라기보다 마을 사랑방에 가까운 공간이었다. 주민들은 병이 있을 때만 오는 것이 아니라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도 종종 들른다. 이곳의 철학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먼저 사람을 보고, 그 다음 병도 진료한다.”

이 진료소를 만든 다케히사 다카히로 원장은 일본의 대형 의료법인 대표였다. 그가 가미야마에 오게 된 계기는 의료가 아니라 큰딸의 교육이었다. 도쿄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딸이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하자 다케히사 부부는 딸이 좋아할 만한 학교들을 찾아다녔고, 가미야마의 숲속학교 ‘밋케’를 만나 온 가족이 이주했다. 행복하게 학교에 다니는 딸을 보며 보답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된 다케히사는 가미야마의 또 다른 문제를 발견했다. 나이 든 주민들이 병이 들면 결국 마을을 떠나 병원에서 생을 마감해야 하는 현실이었다.

“태어난 마을에서 마지막까지 살아갈 수는 없을까?” 이 질문이 오우치 진료소의 출발이었다. 병원을 크게 짓는 대신 의사가 집으로 찾아가는 방문 진료를 시작했고, 주민들이 편하게 들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의료와 돌봄, 공동체를 하나로 연결한 것이다.

함부르크항만청은 정보를 연결해 더 스마트한 항만을 만들었고, 오우치 진료소는 사람을 연결해 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었다. 하나는 기술의 혁신이고 다른 하나는 공동체의 혁신이다. 그러나 둘의 출발점은 같았다. 개방하고, 공유하고, 연결하는 것이었다.

AI는 정보를 연결하는 데 탁월하다. 하지만 사람을 연결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AI는 질문에 답을 줄 수는 있다. 그러나 새로운 질문은 사람들의 만남에서 태어난다. 가미야마의 변화는 계획된 청사진보다 수많은 ‘우발성’이 만들어낸 결실이었다. 우발성은 우연히 생기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이 자주 만나고 연결될 때 비로소 생겨난다.

AI 시대에도 비영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달라지지 않는다. AI를 도입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AI를 활용해 더 많이 연결하고, 더 많이 나누며, 더 많은 만남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연결의 그물망 속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만남이 생기고, 그 만남은 또 다른 연결과 혁신을 낳을 것이다.

스마트한 비영리는 AI를 가장 잘 사용하는 조직이 아니다. AI를 활용해 사람과 사람을 잇고, 공동체를 더욱 깊고 넓게 연결하며, 그 연결 속에서 우발성이 꽃필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조직이다. AI 시대에도 비영리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기술이 아니다.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을 잇는 연결이다.

AI 시대의 스마트함이란 무엇일까? 나는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스마트함이란 더 좋은 기술을 갖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연결을 만드는 능력이다.”

 

✍ 정석 |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 서울대학교에서 도시공학을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연구원에서 13년간 재직하며 북촌 한옥마을과 인사동 보전, 도시경관, 걷고 싶은 도시, 마을만들기 등 다양한 도시정책 연구를 수행했으며, 동북아도시연구센터장을 맡아 중국과 북한 도시를 연구했다. 저서로는 『나는 튀는 도시보다 참한 도시가 좋다』(2013), 『도시의 발견』(2016), 『천천히 재생』(2019), 『행복@로컬』(2024) 등이 있다. 현재 ‘1년에 100만 명 탈수도권’을 제안하는 <일백탈수 지역민국> 운동을 통해 지역 중심의 새로운 국가 비전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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