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종말과 비영리의 일상화 : AI 시대, 비영리 활동의 새로운 존재 의의

윤종수 변호사, 사단법인 코드 이사장

인류 역사상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생산성을 높이고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인공지능(AI)이 주도하는 지금의 변화는 산업혁명과 같은 과거의 기술 변화와는 궤를 달리한다. 과거의 기술이 인간의 육체노동을 대체하며 새로운 형태의 지식 노동과 서비스 직업군을 창출했다면, AI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지성과 창의성 영역의 생산 비용을 제로에 가깝게 낮추고 있다. 전문성이나 막대한 자본, 노력이 필요했던 서비스와 제품들이 AI 버튼 하나로 몇 초 만에 구현된다.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누구나 쉽게 고품질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즐길 수 있는 ‘창작과 풍요의 대중화’가 열린 것이다. 하지만 이 행복한 풍요의 이면에는 잔인한 경제적 진실이 숨어있다. 공급이 무한대에 가깝게 늘어나고 생산 비용이 낮아지면서, 시장에서 대가를 받고 판매되던 제품과 서비스의 상업적 가치 역시 급격히 붕괴하게 된다는 점이다.

최근 ‘AI와 음악’이라는 주제의 세미나에서 시연된 AI가 만든 음악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생성형 AI가 만들어내는 음악은 인간 전문가가 작곡하고 연주한 것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정교하며, 심지어 인간의 그것보다 더 인간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제 대중은 음악적 전문성이 없어도 AI를 활용해 단 몇 분 만에 자신만의 취향이 담긴 완성도 높은 노래를 만들어 즐길 수 있다. 창작 비용의 급격한 하락이 가져온 축복이다. 하지만 음악을 업(業)으로 삼아온 뮤지션들에게 이 축복은 재앙에 가깝다. AI가 수많은 음악을 쏟아내는 세상이라면, 대중은 더 이상 음악이라는 디지털 재화에 기꺼이 지갑을 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음악이 직업이 될 수 없는 시대, 즉 ‘전업 뮤지션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 현상은 비단 음악뿐만 아니라 글쓰기, 디자인, 프로그래밍 등 인간의 지식과 창의성을 기반으로 하던 모든 직업군에 적용된다. 세미나에 참석했던 뮤지션이 체념하듯 던진 말처럼 음악은 이제 ‘생업’이 아니라 ‘부업’, 아니 개인의 ‘자아실현’ 수단에 불과할 것이라는 예측에 반론을 제시하기가 쉽지 않다.

상업적 보상을 기대할 수 없다면, 결국 세상의 모든 활동은 ‘비영리’ 혹은 ‘자발적 취미’가 기본값이 되는 시대로 수렴할 수밖에 없다. 모든 인간 활동이 비영리화되는 세상에서, 기존의 비영리 단체와 비영리 활동은 과연 어떤 존재 의의를 지니게 될까? 국가나 시장이 돌보지 못하는 영역을 메우며 ‘특별한 소수’의 헌신으로 유지되던 기존의 비영리 활동은 그 의미를 잃고 희석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히려 그 반대일 것이다. 이제야말로 비영리 활동이 사회 전체의 중심 패러다임이 될 것이며, 그 어느 때보다 대중에게 깊고 거대한 의미를 주는 시대가 올 것이다. AI 시대의 비영리는 인간에게 ‘존재의 이유와 삶의 의미’를 제공하는 본질적인 커뮤니티의 역할을 하여야 한다. 상업적 직업이 사라지는 세상에서 인간은 극심한 허무주의와 정체성 혼란을 겪을 확률이 높다. “돈을 벌지 못하는 나는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가?”라는 실존적 질문 앞에, 비영리 활동은 인간이 자신의 존엄성을 증명하고, 타인과 연결되며,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비영리 활동은 ‘디지털 풍요’ 속에서 ‘오프라인의 신체성과 고유성’을 연결하는 매개자가 될 필요가 있다. AI가 디지털 상에서 아무리 콘텐츠를 무한대로 만들어 내더라도 인간이 직접 만나 체온을 나누고, 함께 땀 흘리며, 현장에서 호흡하는 ‘물리적 경험’의 가치는 줄 수 없다. 예컨대 비영리 단체는 뮤지션들이 관객과 직접 눈을 맞추며 교감하는 작은 독립 공연장을 지키고, 예술가와 대중이 상업적 이윤 없이도 순수하게 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과 커뮤니티’를 제공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소유와 소비’ 중심의 삶을 ‘참여와 기여’ 중심의 삶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생산 비용이 낮아져 생계 유지 자체가 어렵지 않은 세상이 온다면 대중은 단순한 수혜자에 머물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풍부한 여가와 재능을 사회적 난제 해결에 자발적으로 쏟아부을 수 있도록 정교한 ‘참여의 플랫폼’을 설계하는 것이 비영리 단체의 임무다. 마지막으로 기술 권력의 독점을 감시하고 ‘인간성’을 수호하는 보루가 되어야 한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연대감, 공감 능력, 윤리적 판단력을 우리 사회의 핵심 자산으로 보존하는 역할을 비영리가 맡아야 한다.

결국 AI 시대는 비영리 활동에 있어 위기가 아니라,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가장 거대한 기회의 시대다. AI 세상은 ‘수익성’이라는 잣대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아온 시대를 넘어 ‘진짜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에 대한 기여가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는 시대로 넘어갈 것이다. 비영리 활동은 AI시대에 자칫 영혼을 잃어갈지도 모르는 인간성을 구원할 유일한 수단이며, 직업을 잃은 인류에게 새로운 삶의 궤도를 제시할 이정표다. 누구나 쉽게 창작하고, 누구나 대가 없이 나눌 수 있는 세상. AI가 열어젖힌 이 비영리의 신세계에서, 우리는 ‘공감하고 연대하는 인간’으로 진화할 기회를 맞이하여야 한다.

 

✍ 윤종수 | 변호사, 사단법인 코드 이사장
변호사이자 커먼즈(Commons), 개방(Openness)의 가치와 다양성(Diversity), 참여(Engagement)의 힘으로 열린 사회와 디지털 혁신을 만들어가는 사단법인 코드의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팬데믹으로 위기에 처한 공연장을 돕기 위한 온라인 뮤직 페스티벌인 우무지(#우리의무대를지켜주세요) 프로젝트로부터 이어진 공연장 우무지를 런칭하여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에게 공연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 칼럼과 함께 읽을 추천도서 바로가기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