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프보이스(Deaf Voice)를 읽는 감각
이길보라 영화감독 · 작가 · 코다코리아 대표
아빠가 영상 하나를 보내왔다. 클릭하니 잠옷을 입고 누워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엄마는 스마트폰으로 음성인식 기능을 틀어두고는 입을 움직여 말을 하고 있다.
“이보아.”
그것은 어렸을 때부터 익히 들어온, 엄마가 나를 부르는 방식이다. 진짜 이름은 ‘이보라’지만 ‘라’라는 발음이 소리를 듣지 못하는 엄마에게는 꽤나 어려웠기 때문에 엄마는 나를 소리 높여 ‘보아’라고 부르는 것을 택했다. 나는 그것이 나를 부르는 신호임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배웠기 때문에 그 소리가 들리면 군말 없이 걸음을 옮겨 엄마를 찾았다. 나의 이름을 ‘보라’라고 다르게 발음하여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어린이집에 다닐 때부터였다.
얼굴 표정과 손을 움직여 수어로 말하는 엄마와 아빠는 다른 방식으로 목소리를 냈다. 사람들은 “부모님이 말을 못 하시는 거냐”고 물었지만 내가 기억하는 부모는 항상 ‘말’을 하고 있었다. 세상이 알아듣지 못했을 뿐. 십대 시절에는 아빠가 아침부터 상을 차려놓고는 “팝” “팝” “보아 팝!” 끊임없이 말하며 밥 먹으라고 깨우는 소리가 얼마나 시끄러웠는지 모른다.
초등학생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책 『반짝이는 박수 소리』(2022)에 실은 일화이기도 한데, 때는 즉, 언제 어디서나 전화를 걸고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핸드폰이 상용화되던 시기였다. 농인 부모는 문자메시지를 통해 용건을 주고받았는데, 팩스와 삐삐를 사용하던 시대와 비교하면 가히 혁신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값이 아주 비싸서 어린이인 나는 가질 수 없었다. 당시 엄마와 아빠는 집 근처 노점에서 와플을 구워 팔았다. 점심시간이 훌쩍 넘어 허기가 진 엄마는 핸드폰 키패드에 집 전화번호를 눌렀다. 집에서 TV를 보고 있던 나는 팩스로 걸려 온 전화를 황급하게 받았다. 팩스와 유선 전화기가 합쳐져 있는 형태라, 금방 수화기를 들지 않으면 팩스로 넘어가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허겁지겁 수화기를 들자 “보아, 팝. 팝. 이음 가고아”라는 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엄마 목소리였다. 혼자 노점을 보던 엄마는 어떻게 하면 끼니를 때울 수 있을까 궁리하다 집에 있는 나와 전화로 신호를 주고받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보라, 밥. 밥. 지금 갖고 와”라는 메시지를 엄마는 데프보이스(Deaf Voice, 농인의 목소리)로 전달했다. 나는 귀에 수화기를 대고 생각했다.
‘알겠다고 대답해야 하는 것일까? 그런데 엄마는 듣지 못하는데?’
나는 고민 끝에 내 맘대로 대답하기로 했다.
“알았어! 알았다고. 전화 끊어!”
엄마는 내가 전화를 받았는지, 다른 사람이 받았는지, 전화가 팩스로 넘어갔는지, 내가 무슨 대답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을 터였다.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딸이 언제 전화를 받을지 몰라 전화번호를 누르고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계속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 올바른 발음으로 말하고 있을 엄마를 생각하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생각했다. 적당한 타이밍에 전화를 끊고 밥통을 열어 주걱으로 밥을 뜨고 김치와 반찬을 옮겨 담으며 생각했다. 그래도 엄마의 데프보이스는 내가 가장 잘 알아듣는다고. 세상 사람들이 못 알아들어도 나는 엄마의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찰떡같이 알아듣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나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돋보기안경을 쓴 엄마가 “이보아”라고 말하면 음성인식 기능은 ‘일본에’라고 썼다. 엄마가 한 번 더 말하자 ‘이분의’라고 다시 썼다. 엄마가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카메라를 든 아빠는 껄껄 웃었다. 엄마는 다른 단어를 말하고 싶어 오른손 검지를 들어 “뭐였더라”하고 말하며 잠깐 고민한다. 내가 낳은 아들, 그러니까 당신의 손자 이름을 말하기로 결심하고는 발음한다.
“이수어.”
엄마는 이내 자신의 발음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오른손으로 “틀려, 이상해”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다시 “이수이수” “이슈”하고 말하지만 음성인식 기능은 발음이 정확하지도 않은 데다 거센소리가 아니었는지 인식조차 하지 않는다. 화가 난 엄마는 “바보”라고 크게 말한다. 그제야 스마트폰은 ‘빼뻐’라고 표기한다. 엄마는 다시 한번 말하고 그것은 ‘빼뽀’가 된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쓰고, 마음만 먹으면 영상통화를 하루 종일 할 수 있고, 어떤 문장이든 AI에 넣으면 프로페셔널하게 고쳐주고, 간략한 내용만 입력하면 멋들어진 슬라이드로 뚝딱 만들어주는 인공지능 시대에 생각한다. 이제는 사라지고 없을 이런 이야기는, 수화기 너머로 계속해서 울려 퍼지던 엄마의 데프보이스는, 그걸 누구보다 더 잘 알아듣고 반응하던 몸의 감각 같은 것들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 것이냐고. 농인 엄마의 데프보이스를 읽는 감각, 그리고 그것을 중심에 두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그 이야기를 잃지 않겠다고 오늘도 눈을 가늘게 뜨고 AI를 사용하며 다짐한다.
✍🏻 이길보라 | 영화감독 · 작가 · 코다코리아 대표
농인 부모로부터 태어난 것이 이야기꾼의 선천적 자질을 주었다고 믿고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듭니다.
저서로는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등이 있고, 연출한 영화로는 〈반짝이는 박수 소리〉 〈기억의 전쟁〉 등이 있습니다. 고요의 세계와 소리의 세계를 잇는 비영리스타트업 코다코리아의 대표로도 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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