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의 시간, ‘머뭇거림’

김민섭 비영리법인 당신이잘되면좋겠습니다 이사장

언젠가 비영리재단의 모 선배가 내게 말했다. 당신은 비영리와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그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나에게 비슷한 말과 표정을 보냈다. 아마도 ‘김민섭 씨 찾기 프로젝트’, 이름이 같은 청년에게 비행기 티켓을 양도한 일 때문일 것이다. 그 이야기는 유퀴즈 온더 블럭에 소개되고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라는 책으로도 나와 여러 사람이 아는 이야기가 되었다. 요약하면, 가지 못하게 된 후쿠오카행 비행기 티켓을 양도하려고 했고, 여행사에서는 이름이 같은 사람을 찾아오면 된다고 했고, “김민섭 씨를 찾습니다. 후쿠오카행 왕복 항공권을 드립니다.”라는 글을 올려 93년생 김민섭 씨를 찾았다. 그가 졸업전시 비용이 부족해 휴학하고 일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그의 여행뿐 아니라 대학 졸업비용까지 후원해 주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비영리라는 방식과 엮어서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누군가를 돕기 위해 한 일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 한 일이었던 것이다. 사실 108,300원을 주고 산 티켓을 18,000원만 환불해 주겠다는 말에 그러면 차라리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면 그 사람도 나도 더 행복할 것이라 믿었다. 만약 환불 비용이 30,000원만 되었어도 나는 숨도 안 쉬고 상담원에게 나의 계좌번호를 말해 주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이타적이거나 큰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조금은 이타적인 삶의 태도를 더하게 됐다. 93년생 김민섭 씨는 여행 떠나기 전에 공항에서 나에게 말했다. “여행 잘 다녀올게요. 그런데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생겨서 하고 갈게요. 작가님이 83년생이고 제가 93년생이잖아요, 언젠가 03년에 태어난 김민섭 씨는 제가 찾을게요. 그리고 아무 조건 없이 여행을 보내 줄게요. 지금은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언제가 그러기 위해서 잘 살아 볼게요.”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고마웠다. 사실 그동안 누군가를 도울 때마다 나는 늘 기대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이만큼을 주었으니 저 사람도 나에게 그만큼을 돌려주겠지, 내가 이렇게 희생하고 있는데 나를 이만큼은 따라와 주겠지. 그러나 김민섭 씨가 나에게 밥을 사겠다고 한 것도 기념품을 사오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에게 준다고 하는데도 나에게 갚겠다고 한 것만큼이나 좋았다. 그간 나에게도 대가 없는 도움을 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도 나에게 갚으라고 말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도 나에게 이런 말을 듣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저 이거 잘 가지고 있다가, 더 크게 만들어서, 언젠가 다른 사람에게 전하겠습니다. 지금은 할 수 없는 일이니까 잘 살아 보겠습니다.” 그들도 혼자 이룬 것을 나에게 주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언젠가 다른 사람에게 받은 걸 너에게 주는 거니까 나에게 갚을 필요 없어, 잘 가지고 있다가 너를 닮은 사람에게 전해주는 것으로 너도 다음 사람에게 갚아 줘. 결국 우리는 ‘다음 사람’을 상상하며 서로 연결될 수 있고 개인은 성장할 수 있다.

유퀴즈에 출연한 93년생 김민섭 씨에게 유재석 씨가 물었다. 그 프로젝트 이후 당신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느냐고. 민섭 씨는 답했다. “온전히 나만 잘되는 길을 선택할 때 조금 머뭇거려지기는 해요.” 나는 그 머뭇거림이라는 표현이 좋았다. 세상은 우리에게 합리적인 답을 빨리 줄 것을 늘 요구해 온다. 그러나 인간은 어떠한 선택 앞에서 머뭇거릴 수 있는 존재다. 이기적인 선택을 늘 고민할 수밖에 없지만 이타적인 결과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우리는, ‘다정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이것은 AI나 기계는 할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본성이자 가치일 것이다. 나는 이 다정함이 우리는 인간답게 만든다고 믿는다. 타인을 상상하고, 그의 처지에서 사유하고, 그가 가진 아픔에 공감하고, 서로를 위한 답을 찾아 나갈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동정을 기반으로 한 다정함으로 타인을 대하며 영리와 비영리가 공존하는 세상을 지탱시켜 나갈 수 있다.

나는 요즘도 이기적인 고민과 선택을 계속해 나간다. 그러나 요즘은 한 가지 노력을 더한다. 이타적인 고민을 한 줄 정도 더해보는 것이다. 어떠한 선택을 할 때 이기심이 먼저 찾아오는 것을 어쩔 수 없다. 그것을 인정하고 나면 이기심을 기반으로 한 이타심이 가능해 진다. 타인을 위해 무조건 양보하고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잘됨을 충분히 고민하며 너의 잘됨을 함께 고민할 수 있다. 중요한 건 ‘내가 잘되고 너를 돕겠다’는 마음은 안 된다. 나는 그런 사람이 타인을 돕는 것을 별로 본 일이 없다. 다만 나의 잘되는 과정 속에서 네가 함께 잘되는 구조를 만들어 보겠다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기심과 이타심이 함께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보게 되면 우리의 평범한 다정함이 건강하게 지속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얼마 전 나는 이러한 선택을 했다. 작년 봄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살이 너무 쪘기에 아침마다 조금씩 뛰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렇게 이기적인 일이 없다. 나만 건강해지고, 나만 옷이 잘 맞고, 나만 기분이 좋아진다. 사실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건강해지며 타인도 건강해지는 방법이 없을지를 고민했다. 그러고보니 내가 헬스장을 가는 것도 아니고 개인pt를 받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1km를 뛸 때마다 500원씩 모아서 연말에 운동화가 필요한 청소년에게 선물하면 어떨까. 나의 친한 친구 원재와 지성에게 말했다. 너네도 매일 뛰잖아, 우리 500원씩 모아서 연말에 좋은 일 하자. 그들도 흔쾌히 응했다. 그래서 나는 달리기를 할 때마다 “오늘은 3km를 뛰고 1,500원을 기부했습니다.”하고 sns에 올렸다. 그런데 같이 하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자신도 뛰고 기부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당잘런’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당신이 잘되기를 바라는 런닝모임. 작년 연말에 530여 만원이 모였다. 함께 뛴 거리가 10,000km를 넘겼다. 전국의 보육원에서 운동화가 필요한 청소년 53명을 찾아 운동화를 구매할 수 있는 쿠폰을 보내 주었다. 그들이 보내온 사진을 보며 나도 친구들도 울컥한 것이었다. 아이들이 후원을 받고는 있으나 원하는 브랜드의 신발을 산 것이 처음이라고 했다. 2026년 5월에는 170여 명의 당잘러들이 걷고 뛰고 500원씩 기부하고 있다. 올해 연말엔 더 많은 청소년들에게 그들이 걸어갈 신발을 신겨주고프다.

나는 이러한 일을 사랑한다. 나의 잘됨을 위해 시작한 일이 너의 잘됨이 되고, 그 과정 속에서 나와 삶의 방향과 가치가 비슷한 이들과 함께 연결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비영리의 한 방식이다.

작년에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라는 이름의 비영리법인을 설립했다. 청소년들과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이 법인의 주된 문화사업이다. 2년 전 안동의 중학교에 갔을 때 어느 학생이 물었다. “저도 일본에 여행 보내주실 수 있나요?” 강의가 끝나고 그에게 말했다. 전화번호를 적어달라고. 언젠가 꼭 연락하겠다고. 그리고 그날 집에 가는 길에 결심했다. 그동안 내가 번 돈과 앞으로 벌 돈들을 청소년들을 여행 보내주는 데 쓰기로. 그 순간 내 생의 한 방향이 환해졌다. 그동안 나의 미래는 늘 어둡고 불안했다. 내가 저기 합격할 수 있나, 정규직이 될 수 있나, 남들에게 뒤처지지는 않을까. 그러나 이제는 괜찮다. 앞으로 나의 삶에 어떠한 일이 찾아오든 내가 이 방향만 잃지 않으면 될 것이다. 그러면 잘됨과 안됨의 경계는 사라지고 모든 과정은 나에게 가까워지는 길이 된다.

작년 여름에 나는 동혁이와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그는 고등학생이 되어 있었다. 영주에 있는 철도고등학교에 진학해 철도자격증도 두 개를 땄고 코레일에 들어가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 개구쟁이가 이렇게 잘 크고 있다니. 나는 그와 4명의 청소년을 더 선발해서 작년 8월 첫째주에 일본 오사카로 3박4일 동안 여행을 다녀왔다. 나와 법인의 사무처장과 두 명의 인솔교사가 함께했다. 여행을 다녀온 한 학생이 말했다. “저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졌어요.” 그래, 그 말 한 마디를 듣기 위해 18,000원을 환불받는 대신 여기까지 온 건지도 모른다.

나는 ‘머뭇거림’에 대해 여전히 생각한다. 세상은 앞으로도 우리에게 합리적인 답을 기계처럼 빨리 줄 것을 요구하겠으나, 우리에게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그 머뭇거림의 시간이 있다. 우리가 이기적인 고민을 계속해 나가되, 이타적인 고민을 한 줄씩 더하며, 다정한 선택을 할 수 있길 바란다. 당신과 내가 다정한 이야기를 만들며, 그로 인해 좋은 어른에 더욱 가까워지길 응원한다.

비영리법인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는 올해도 청소년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올 예정이다. 홈페이지(http://www.wishyouwell.co.kr)에서 5월 중 에세이 공모전을 연다. 당신 주변의 잘되길 바라는 청소년들에게 많이 소개해 주시길 바란다. 그리고 당신과도 후원뿐 아니라 여러 방식으로 연결될 수 있으면 좋겠다. 비영리와 영리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당신의 잘됨을 바란다.

 

✍🏻 김민섭 | 비영리법인 당신이잘되면좋겠습니다 이사장
서점 ‘당신의 강릉’과 비영리법인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 등의 책을 썼습니다.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는 글을 쓰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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