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당신의 현장은 안녕하십니까?

서미연 동대문종합사회복지관 부장

ChatGPT를 시작으로 여러 인공지능 도구를 사용하면서 업무에 있어 정보를 얻고, 이해하고, 분석하고, 활용하는 일상적 패턴 자체가 크게 달라졌다. 처음에는 나의 서툴고 불완전한 질문에도 구글과 유튜브 검색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그럴듯한 답을 내놓는 기능에 감탄하며 ‘성능 좋은 검색엔진이 나왔네?’ 싶었다. 그러나 이내 적확한 자료를 신속하게 찾아내는 것은 물론, 자료를 분석하고 요약하며 실시간으로 가공하는 기능은 그간 여러 단계를 거쳐야 했던 업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그에 할애되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켰다. 종종 너무도 당당하게 거짓 정보를 내놓는 탓에 기사든 논문이든 원자료를 찾아 검증하는 절차가 뒤따르기는 했지만, 십수 년간 익숙했던 무료 검색창이 불과 한두 달 만에 유료 인공지능 도구로 대체되는 경험은 나 역시 인공지능 시대의 한가운데 살고 있음을 몸소 체감하게 했다.

꽤 오래전부터 나는 사회복지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소모적인 행정업무를 왜, 계속, 굳이 이런 방식으로 해야 하느냐고 물어왔다. 그때마다 그냥 하던 대로 할 수밖에 없음에 속이 타들어갔지만 ChatGPT가 등장하고 세상이 무섭게 바뀌는데 더 이상 하던 대로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지난 2023년부터 복지관 전체의 서비스 데이터를 표준화·코드화하여 단일한 플랫폼에 축적해 나가는 방식의 실적 관리 시스템을 구상하면서 낡은 고민을 구체적으로 해결해가는 시도 중에 있다. 그 과정에서 지금은 연간 40만 건 이상의 데이터를 모으게 되었는데, 모아진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일상적으로 가져왔던 인식과 복지관 서비스 운영의 실제 간에 차이를 발견하고, 지역사회 현황 대비 우리가 잘 챙기고 있지 못한 내용들을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모으고 있는 모든 데이터의 출처가 ‘사람’이고, 대개는 몇 세대에 걸친 민감한 정보라는 사실에 문득 기술의 유용성 외에 다른 질문들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갖게 되었다. 

예컨대 그중 하나가 개인정보와 관련된 것이다. 모든 복지시설이 그러하듯, 우리 복지관 역시, 서비스 신청단계에서 클라이언트에게 개인정보 제공과 활용에 대한 동의를 받는다. 이 동의절차를 통해 클라이언트가 ‘제공’한 개인정보는 삭제 주기의 유무와 관계없이 서비스 제공자에게 사실상 ‘소유’된다. 문제는 당사자인 클라이언트가 자신의 개인정보가 데이터로서 어느 범위까지 수집되는지, 기관의 결재라인을 통해 누구에게 공개되고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대부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다. 서비스 이용을 원하는 클라이언트가 형식적·절차적으로 단지 ‘제공’에 동의한 수십만 개의 데이터에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하는 일이 혹여 서비스제공자인 나의 쉽고 간편한 일처리를 위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인공지능을 공식적으로 전사 차원에서 빠르게 도입하고자 했던 계획에 잠시 숨을 고르게 되었다. 디지털 전환이 가져올 가능성 이전에, 기존에 우리가 관행적으로 해오던 방식들을 선한 예민함으로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복잡성 연구자인 브라이언 아서는 발명, 혁신, 기술 발전의 사례들을 무수히 조사한 끝에 ‘무언가를 발명한다는 것은 기존에 있었던 것들 속에서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했다.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기술 앞에서, 우리가 먼저 돌아보아야 할 것도 우리가 해왔던 기존의 것들 속에 있다. 동의 절차는 충분히 설명되고 있는가. 데이터의 주인은 누구인가. 클라이언트와의 관계 맺음 방식은 기술이 개입된 이후에도 여전히 클라이언트 중심인가. 인공지능 시대는 새로운 해답이 아닌 우리에게 익숙한 질문을 낯설게 꺼내들고 답하길 요구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던지는 또 하나의 질문은 효율성에 관한 것이다. 더 빠르게 찾고, 더 정확하게 추천하고, 더 짧은 시간 안에 결정하게 만드는 기술 앞에서 우리는 사회복지실천의 속도에 대해 다시 묻게 된다.

아마존에서는 마우스 클릭 몇 번만으로도 200만 권이 넘는 책을 찾고 살 수 있으며 내가 고른 책과 연관된 다른 책이 끊임없이 추천된다. 대조적으로, 미국의 일반적인 오프라인 서점이 보유한 책은 약 4만 권이며 가장 규모가 큰 뉴욕시의 반즈앤노블 서점에도 25만 권밖에 없다. 인공지능은 지식을 얻기 위해 소비하는 시간과 그 지식을 바탕으로 무언가를 행동하는 시간을 비약적으로 줄여냈지만 사회복지현장의 모든 일을 효율의 언어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오늘도 우리는 내가 돕는 아이의 손을 잡고, 버스를 타고, 동네 서점에 가서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함께 찾고, 그 아이가 원하는 책을 스스로 고를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일상을 산다. 그렇게 얻은 책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가 지어 보였던 표정, 아이와 나누어 먹었던 아이스크림에 의미를 두고 이를 한 땀 한 땀 꿰며 붙드는 것이 우리 업(業)의 본령이다. 우리는 몰라서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이 무엇인지 알기에 흔들림 없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공지능 시대에 불시착한 문과형 인간으로서의 불안이나 맹신이 아니라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문과형 인간의 DNA를 재확인하는 일이다. ‘디지털에 관한 모든 것에 있어 결코 안 된다고 말하지 않는 편이 현명하다’는 제2의 기계 시대에서 사람을 중심에 두는 사회복지의 감각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는 마법 같은 기술을 통해 우리 일의 이상에 더 가까이 닿을 수 있을 것이다. 10년 전, 이세돌 9단이 알파고를 이겼던 단 1승의 경기에서 나왔던 78번째 수를 잃어버리지 않는 힘, 그것이 인공지능을 더욱 선하고 옳은 방식으로 사용하기 위한 우리 현장의 가장 큰 노력이어야 한다. 

바라기는, 손쉽게 얻는 지식의 풍요 속에서 지혜는 어떻게 지킬 것인지, 생산성과 효율로 압도되는 디지털 전환의 과정 속에서 클라이언트 중심이라는 사회복지실천의 본질을 어떻게 붙들 것인지 이야기하는 현장의 공간들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거칠더라도 정직한 질문과 답변, 다정한 시선이 우리 안에 필요하다. 결국 인공지능과 공존하는 사회복지현장의 안녕은 완벽한 기술이 아니라, 오늘 이 순간에도 현장을 지키며 클라이언트의 곁에 서 있는 우리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 서미연 | 동대문종합사회복지관 부장
즐거운 노동을 통해 자유를 찾아가는 18년차 현장 사회복지사입니다. 경계선지능인과 같이 제도권 복지 밖 이웃들도 품격 있게 살아가는 지역사회를 디자인하고, 그 일을 건강하게 행하는 사회복지조직을 만들어 가는 일을 합니다. 2024년 한국사회복지사협회의 지원으로 ‘인공지능 윤리’를 주제로 한 미국 연수를 다녀온 후, 인공지능을 접목한 각종 업무 시스템 기획에 참여하며 사회복지사다운 기술 활용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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