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비영리 조직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효율이 아니라 신뢰입니다: 공익법인 회계·세무 전문가가 본 AI 활용의 책임과 검증
윤규섭 삼일회계법인 부대표

최근 AI에게 이런 질문을 해본 적이 있다.
“공익법인이 기부금을 사용할 때 주의해야 할 세법상 쟁점은 무엇인가?”
결과는 놀라웠다. 몇 초 만에 관련 법령과 검토사항을 정리해 주었고, 언뜻 보면 전문가가 작성한 자문 메모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용을 하나씩 검토해 보니 실제 존재하지 않는 법령을 인용하거나 현행 규정과 다른 내용을 설명하는 부분도 있었다.
만약 이런 내용을 검증 없이 사업보고서나 의사결정에 활용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성형 AI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비영리 현장에서도 AI 활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회의록 작성, 사업계획서 초안 작성, 홍보 콘텐츠 제작, 데이터 분석 등 과거에는 많은 시간과 인력이 필요했던 업무를 AI가 상당 부분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제한된 예산과 인력으로 운영되는 비영리 조직에게 AI는 분명 매력적인 도구다. 실제로 현장에서 만나는 많은 공익법인과 비영리단체는 늘 인력 부족 문제를 안고 있다. 한 사람이 사업 운영과 함께 예산 관리부터 결산, 공시 업무까지 모두 수행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 점에서 AI는 단순한 기술을 넘어 일손을 덜어주는 유능한 조력자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AI가 등장했다고 해서 우리가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이 효율성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회계사로서 사회복지법인, 학교법인, 의료법인, 기업재단 등 다양한 공익법인을 자문하면서 느낀 것은 비영리 조직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사람도, 건물도, 예산도 아닌 신뢰라는 사실이다. 기부자는 자신의 기부금이 공익을 위해 사용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기부를 한다. 수혜자는 조직이 공정하게 지원할 것이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도움을 받는다. 정부와 사회 또한 공익법인이 설립 목적에 맞게 투명하게 운영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결국 비영리 조직은 자산이 아니라 신뢰로 운영되는 조직이다.
그런데 AI는 업무의 효율성을 높여줄 수는 있어도 신뢰까지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실제 현장에서는 기부금 사용, 공시, 보조금 집행과 관련된 작은 판단 착오가 세무상 문제나 대외적 신뢰 훼손으로 이어지는 사례를 종종 접하게 된다. 기부금 사용 기준, 직접공익목적사업비 해당 여부, 출연재산 사후관리, 공시, 보조금 집행, 개인정보 처리 등은 단순 정보 검색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영역이다. 법령 해석과 사실관계 검토, 그리고 전문가의 판단이 함께 필요하다. AI가 그럴듯한 답변을 제시하더라도 규정을 잘못 해석하거나 적용 요건을 누락한다면 조직은 잘못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AI가 대신 져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AI는 조언할 수는 있지만 책임질 수는 없다. 결국 최종 판단과 책임은 사람의 몫이다. 그래서 비영리 조직의 AI 활용에는 몇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AI의 답변은 반드시 검증해야 한다. 법령, 회계기준, 관리지침, 계약 내용과 관련된 사항은 원문과 대조하여 확인해야 하며, 사업보고서나 공시자료와 같이 외부에 공개되는 문서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둘째, 개인정보와 민감정보 보호를 우선해야 한다. 비영리 조직은 기부자와 수혜자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다루고 있는 만큼 편의성만을 이유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
셋째, AI를 비용 절감 수단이 아니라 공익 미션을 위한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 반복 업무를 줄여 확보한 시간을 수혜자 지원, 기부자 소통, 사회문제 해결과 같은 본질적 업무에 재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이미 다양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AI를 활용한 회계·세무 검토 지원, 사업비·연구비 정산, 대학과 공공기관의 성과 관리, 기업재단의 운영 체계 고도화 등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최신 기술을 가장 많이 도입하는 것이 아니다. AI를 활용하면서도 검증 절차를 유지하고, 투명성과 책임성을 지키며, 사회의 신뢰를 더욱 두텁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모든 비영리 조직이 자체적으로 AI 전문인력을 확보하거나 관련 역량을 내부에 구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특히 규모가 작은 조직일수록 예산과 인력의 제약이 크다.
따라서 필요한 경우에는 회계·세무, 법률, 정보 보호, 데이터 분석, AI 활용 등 분야별 전문성을 갖춘 외부 전문가와 전문기관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직접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책임과 통제 아래 적절한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AI 활용 역시 내부 역량과 외부 전문성이 조화를 이룰 때 더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 비영리 조직이 지켜야 할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공익성과 신뢰이며, 이를 위해서는 검증 가능한 협업 체계와 책임 있는 의사결정 구조를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술은 계속 발전하겠지만 비영리 조직의 경쟁력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책임 있게 활용할 수 있는 신뢰에서 결정될 것이다. 회계와 세무의 본질이 숫자가 아니라 신뢰이듯, AI 시대에도 비영리 조직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결국 신뢰다.
✍ 윤규섭 | 삼일회계법인 부대표
공공기관과 비영리조직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투명한 운영을 지원하는 전문가입니다. 삼일PwC 공공·비영리 플랫폼을 이끌며 회계, 세무, 내부통제, 경영관리 영역의 다양한 자문을 수행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AI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비영리조직과 공공기관의 생산성과 관리 역량을 높이는 새로운 운영 모델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공익법인이 본연의 미션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회계 전문성 강화와 혁신적인 운영체계 구축 방안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 칼럼과 함께 읽을 추천도서 바로가기
모모
본 칼럼에 게재 된 외부 필진의 글은 다음세대재단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