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는 어떻게 생성되는가
김찬호 성공회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얼마 전에 어느 신문사 기자가 기사를 쓰면서 전문가의 의견을 넣기 위해 내게 전화로 인터뷰를 청해왔다. 나는 그가 다루는 현상에 대해 분석하면서 견해를 피력했다. 나는 자기 분야에서 애쓰는 청년을 돕는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0분 정도 시간이 소요되었는데,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힘이 빠졌다. 허공에 대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의 말을 기계적으로 받아 적기만 할 뿐, 거기에서 어떤 실마리를 잡아 더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예전에는 기자의 취재에 응할 때 생각의 티키타카를 하는 즐거움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전혀 그것을 경험할 수 없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친구는 지금 나를 인공지능처럼 대하고 있구나. 우리는 인간을 대하는 감각이 점점 떨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실제로 온라인으로 상담을 하시는 분이 고객에게서 “혹시 로봇이신가요?”라고 질문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오프라인에서도 은연중에 인간을 로봇과 혼동하는 일이 벌어진다. 돌이켜 보면 나도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분들을 키오스크 버튼 누르듯 대하는 버릇이 생겼다. 매뉴얼대로 정확하게 작동시켜야 하는 시스템에 익숙해지다 보면, 인간과의 상호작용도 기계적인 코드로 진행되기 쉽다. 물론 서비스 제공자가 먼저 고객을 그렇게 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제품 사양’, ‘설계 명세서’, ‘지시 사항’ 등을 뜻하는 specification이 한국에서는 ‘스펙’이라는 콩글리시로 축약되어 ‘사람의 능력이나 조건’을 지칭하는데, 인간을 사물화하는 경향은 갈수록 더 농후해지는 듯하다.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없는 것들의 목록이 점점 짧아지는 세상이다. 그런데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한다 해도 끝까지 인간의 몫으로 확실히 남을 것이 있다. 몸으로 소통하는 것이다. AI를 활용하면 가상 또는 실제 인물을 감쪽같이 합성해 내고 죽은 사람과도 대화할 수 있지만, 아날로그 현실에서 표정과 몸짓과 말로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마음을 헤아리는 일은 사람이 직접 해야 한다. 직업 세계에 그 일은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 사회학자 엘리슨 퓨는 『사람의 마지막 직업』이라는 책에서 그것을 ‘연결 노동(connective labor)’이라고 명명했다. ‘타인의 마음을 읽고 되돌려주는 숙련된 실천이자 성과를 산출하는,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간의 노동’을 뜻한다.
저자에 따르면, 상담사, 코치, 교사, 매니저, 비서, 판매원 등 수많은 노동자가 연결 노동을 수행하고 있지만, 그 중요성이 단편적으로만 이해될 뿐 인정이나 보상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그 역할이 AI로 코드화되고 자동화되면서 ‘인간다움을 드러내는 장인의 기술’과 그것이 발휘되는 고밀도 접촉이 사라진다. 이것은 인간관계가 삭막해졌다는 아쉬움을 넘어, 사람들이 공동으로 빚어내는 변화의 힘이 저조해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의사와 환자 사이에 신뢰와 교감을 통해 증진되는 치료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러한 무형의 부가가치는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생성되어 왔는데, 지금 우리는 편의주의와 이윤 추구에 매몰되어 그 소멸을 방치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시대의 흐름에서 비영리 부문은 어떤 의미로 자리매김되는가. <가격>으로 표시되는 사적 이익만이 아니라 <가치>로 체감되는 공적 이익도 아울러 꾀하지 않으면 사회가 허약해지고, 경제 성장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서로의 몸을 드러내며 발언하고 경청하는 공론장은 풍요로운 삶의 토대가 된다. 거기에서 우리는 다정한 유대를 맺고 유쾌한 피드백을 통해 공통 감각을 넓힐 수 있다. 경쟁이 아닌 협업이 요청되기에 자신의 약점이나 무능함을 애써 감추지 않고 연민(compassion)의 가슴을 열어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느라 타인과 부질없이 맞서지 않아도 되는 세상의 문이 거기에서 열린다.
인간의 마음은 데이터로 환원되지 않는 생명의 에너지다. 그리고 그것은 개별 두뇌에 갇혀 있지 않고 관계망 속에서 상호작용한다. AI가 인간의 지능을 대체하는 데 근본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며 충만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서로 편안하게 접속하고 어우러질 수 있는 장(場)이다. 개인들이 점(點)들처럼 이어지는 선(線)의 네트워크에서 발생하기 쉬운 긴장이 면(面)의 다원적 구성에서 누그러질 수 있다. 입체적인 관계망 속에서는 저마다의 취약함이 자연스럽게 보완된다. 정서적으로 안전함을 느끼는 만남에서 우리는 잠재력을 충분히 꽃피울 수 있다. 거기에서 AI는 우리의 역량을 증강시켜 주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다.
✍🏻 김찬호 | 성공회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사회학을 전공했고, 대학에서 심리학과 교육학 등을 강의하고 있으며, 대학 바깥에서 평생학습, 자녀 양육, 교사의 정체성, 다문화 사회, 노년의 삶, 마을공동체 등 여러 주제로 사회과학과 인문학을 연결하여 강의와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저서로 『생애의 발견』, 『돈의 인문학』, 『모멸감』, 『유머니즘』, 『대면 비대면 외면』, 『베이비부머가 노년이 되었습니다』, 『고통을 다스리는 민주주의』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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