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에 남지 않는 사람들: AI가 놓친 삶, 비영리가 물어야 할 빈칸

안병민 열린비즈랩 대표

한 외국인 노동자가 병원 접수창 앞에서 멈춘다. 그는 아픈 곳을 설명할 수 있다. 일한 기록이 있다. 한국 주소가 있다. 여권도, 외국인등록증도 있다. 회사에서 받은 건강검진 안내 문자도. 그런데 이름이 조금씩 다르다. 여권의 영문 이름, 외국인등록증의 이름, 회사가 입력한 줄임 이름이 서로 맞물리지 않는다. 건강검진 이력은 여기 시스템에, 고용 기록은 저기 시스템에, 상담 기록은 또 다른 이름 아래 흩어져 있다. 없는 사람이 아니다. 너무 여러 방식으로 기록되어 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오래 방 밖으로 나오지 못한 청년도 있다. 혼자 사는 그는 병원에 가지 않는다. 상담 전화를 걸지 않는다. 구직 이력도 없다. SNS도 하지 않는다. 가족과는 드문드문 연락한다. 낮에 자고 밤에 깬다. 문밖의 소리를 피한다. 휴대전화 알림도 껐다. 누구에게도 설명되지 않는 시간이 방 안에 쌓인다. 행정 시스템에서 보는 그는 ‘문제없음’이다. 위험 신호가 잡히지 않아서다. 아무 기록이 없기에 아무 문제도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AI는 세상을 더 잘 보게 만든다고들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AI는 사람이 놓친 패턴을 찾고, 흩어진 정보를 묶고, 반복되는 신호를 포착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AI는 사람을 직접 보지 않는다. 데이터로 번역된 인간을 본다. 이름, 주소, 신청 기록, 진료 기록, 접속 이력… 이 번역이 매끄러우면 존재가 선명해진다. 어긋나면 삶도 흐려진다. 어떤 사람은 기록이 흩어져 밀리고, 어떤 사람은 신호가 없어 사라진다. 어떤 사람은 표준 양식에 맞지 않아 오류가 된다.

기술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록을 남긴 사회의 습관이 문제다. 누구의 이름은 표준이 되고, 누구의 이름은 예외로 밀린다. 누구의 침묵은 안정으로 읽히고, 누구의 고통은 통계 밖에 남는다. AI는 사회가 남긴 과거의 시선을 압축해 현재에 비추는 거울이다. 그래서 AI가 놓친 사람은 기술이 새로 만든 예외가 아니다. 사회가 이미 놓치고 있던 사람이다. AI는 그 외면을 더 빠르고 정교하게 반복한다. 비영리가 소환되는 지점이다. 

시장이 사람을 보는 기준? 구매력이다. 행정의 기준은 신청과 자격이다. AI의 기준은 데이터다. 비영리는 그 기준들 사이에서 빠지는 사람을 붙드는 조직이어야 한다. 비영리가 AI를 외면할 이유는 없다. 반복 업무를 줄이고, 현장의 데이터를 더 잘 읽고, 후원자와 더 긴밀하게 소통해야 한다. 기술을 외면한 선의는 오래 버티기 어렵다. 

다만 AI를 쓰는 것과 AI의 시선에 갇히는 것은 다르다. 비영리는 흩어진 기록을 한 사람의 맥락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이름을 대조해야 한다. 기록을 연결해야 한다. 찾아가야 한다. 신청하지 않은 이유를 물어야 한다. 탈락한 사람을 다시 봐야 한다. ‘신호 없음’을 ‘문제없음’으로 오독해선 안 된다. AI가 패턴을 읽는다면, 비영리는 패턴 바깥의 침묵까지 읽어야 한다.

더 불편한 질문도 남는다. AI만 그런가. 비영리는 안전한가. 비영리도 때로는 증명하기 쉬운 고통을 선호한다. 지원사업에 맞는 고통, 사진으로 남는 고통, 성과지표가 되는 고통을 먼저 붙든다. 행정 양식에 맞는 사람은 지원받고, 설명이 힘든 사람은 뒤로 밀린다. 쉽게 공감되는 이야기는 캠페인이 되고, 구조가 복잡한 이야기는 회의록에만 남는다.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례를 고르는 순간이다.

AI 시대의 질문은 그래서 더 아프다. AI가 누구를 놓치는가만 물어서는 부족하다. 우리는 증빙이 부족한 고통을 뒤로 미룬 적은 없었나. 지원하지 않은 사람을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처리한 적은 없었나. AI 시대 비영리는 톺아 물어야 한다. 이 데이터는 누구의 삶을 빠뜨렸는가. 빠진 사람은 왜 기록되지 않았는가. 그 빠짐을 현장은 어떻게 다시 확인할 것인가. 정말 어려운 삶은 대상자 정의에 깔끔하게 들어오지 않는다. 성과지표로 환산하기도 어렵다. 바로 그 난해함이 비영리의 자리다.

AI의 빈칸은 기술의 결함만이 아니다. 우리가 만든 사회의 사각지대다. 비영리의 일은 그 사각을 메우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이 왜 생겼는지 묻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빠르게 분류되지 않는 삶을 포기하지 않는 일. 흩어진 이름과 조용한 침묵 속에서 끝내 한 사람의 삶을 복원해내는 일. 사회가 빈칸으로 처리한 사람에게 다시 얼굴과 맥락과 시간을 돌려주는 일. AI 시대 비영리의 존재이유다.

 

✍🏻 안병민 | 열린비즈랩 대표
경계를 허물고 본질을 탐구하는 혁신가다. 마케팅과 리더십, 디지털과 AI를 넘나들며 하나의 뿌리로 이어지는 경영 혁신의 유기성을 톺아본다. 비영리·사회복지 현장에 대한 존중과 애정이 깊다. “경영은 내 일의 목적과 내 삶의 이유를 실재화하는 혁신의 과정”이라 역설한다. 『질문인간: AI 사용법을 넘어 AI 사고법으로』등 혁신을 꿰뚫는 여러 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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